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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노릇 구워서
임현희 2020-01-21 추천 7 댓글 0 조회 1142

한 때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를 때면 참새 방앗간이 있었다. 맥반석 위에서 노릇노릇 잘 구워진 반 건조 오징어다. 적당히 노릇노릇 구워져 향긋한 냄새와, 부드러운 육질에 나를 맡기면 졸음도 달아나고 나름 신나는 운전이 되었다. 이보다도 훨씬 먼저 열려졌던 잔치는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집에 오는 길목에서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세대는 상상도 못해 낼 국민학교 세대만의 세월에 깊이 간직된 향취라고나 할까. 등교 길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내고 방과 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면서 적당한 곳에 판을 벌렸다. 이미 추수가 끝난 밭의 언덕에서 매의 눈으로 약간은 푸른 기가 남아있는 보리 이삭을 주워 한곳에 모아놓고 불을 지핀다. 저마다 공책이나 필통 뚜껑이나 고무신을 들고 바람을 일으키고 불꽃을 거세게 만들려는 연합작전을 펼치고 있지만 실상은 마르지 않은 보릿대에게 생성된 매캐한 연기를 상대방에게 보내려는 심보가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한 참을 매운 연기로 전신욕을 하고, 값진 눈물의 희생이 뒤따른 뒤에 여기저기를 허적거리며 진화작업을 한다. 아직도 불 온기가 남아있으련만 성질 급한 친구의 손길이 잿더미 속으로 진입하는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검은 재를 한 줌씩 집어 들어 나이만큼 쇠어진 고사리 손 보자기에 번갈아 내던지며 열기를 식히다가 잘못 한 것도 없는데도 싹싹 잘들 비벼댄다. 그러다 보면 검은 재가 벗겨지고 노릇노릇하고 푸릇푸릇한 보리알갱이들이 한 줌 손에 잡힌다.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아니 서로의 입주동이에 묻은 검은 낙서와 저마다의 이유로 눈물과 마스카라가 범벅이 되어 검은 눈물을 그려내는 여성들처럼 매운 연기에 눈물 흘리며 비벼댄 흔적으로 생긴 펜더 눈들을 바라보며 한 참을 배꼽을 잡는다.

 

   그러다보니 노릇노릇의 고향일기에 담겨진 옛 생각이 기차행렬이 된다. 외할머니께서 냇가에서 잡아 석쇠에 구워 발라 주셨던 노릇노릇한 미꾸라지 속살. 모내기를 하기 위해 논에 물을 대려고 작동했던 발통기 속에 철사로 줄줄이 꿰어 노릇노릇하게 익혀 먹었던 하지 감자. 엄마의 밥 짓기가 멈춰진 부뚜막에 한참의 인내심의 결실로 기껏 꺼내 입에 넣었다가 입천장을 너슬너슬하게 만들었던 노릇노릇 잘 익은 고구마 속살. 이렇게 노릇노릇 잘 구워진 음식은 나의 살던 고향 터에 진하고 정겨운 도장을 쾅하고 찍어놓았다.

 

   우리의 삶도 어떤 일에 몸과 마음과 시간과 열정을 쏟으며 그 일에 합당한 노릇에 일련의 어떤 노릇을 거듭하다보면 맛깔난 음식과 과일처럼 단내 나는 결실이 있게 된다.‘노릇이라는 말은 어떤 역할과 구실을 낮추어 나타내는 말이다. 자연히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은 역할과 구실의 구심점 위치에 포진할 수 없는 보조 역할이기 때문이다. 마치 주연을 돋우게 하는 조연과 같은 역할일 것이다. 또한 장미꽃을 품은 안개꽃과 같다 할 것이다.

 

   조연이 없어도 어느 정도 주연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안개꽃 없이도 장미꽃의 위상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조연의 노릇, 안개꽃의 보위하는 노릇으로 인하여 주연의 역할이 빛이 나고, 장미꽃의 위상이 곱게 드높여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연으로, 보조로 역할 하는 노릇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기려한다. 그러나 그 일련의 노릇들은 훗날 주연이 되고 꼭지점에 자리매김 될 때 텅 빈 강정이 되지 않도록 나를 채우는 소중한 시간이고 경험이다.

 

   목회자에게도 값진 경험의장인 노릇의 과정이 있다. 교육전도사, 전임전도사, 부목사 말이다. 담임목사가 되어 한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을 때 이 노릇의 과정은 값진 자산이 되며 다양한 성도들을 아우름의 초석이 된다.

 

   모세 곁에서 겸손하게 2인자 또는 종과도 같은 노릇을 곧 잘 해나왔던 여호수아는 모세가 모압 땅 느보 산에서 안수하여 지도자의 귄위를 인계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전달되었고 백성들도 여백 없는 마음으로 여호수아의 말에 따랐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신명기 34:9)

 

   성경에는 살게 되는 노릇과 죽게 되는 노릇이 기록되어 있다. 죽게 되는 노릇은 사단에게 종노릇하게 될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가령 거짓 선지자 노릇, 사망 안에서 죄의 노릇, 썩어짐의 노릇,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등이며, 반대로 살게 되는 노릇은 성령님께 이끌리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삶에 종노릇하는 모습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로마서 5:17)

 

   사탄의 종노릇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릇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사탄의 종노릇은 이것 저 것 따질 것 없이 쏟아내면 손쉽게 된다. 마음껏 찢고 부수고 쪼개면 사탄에게 칭찬받는 노릇이 될 것이고 종내는 사탄과 함께 그 잿더미 위에 같이 드러누우면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릇은 인내가 필요하다. 때로는 하나님께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것 같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종노릇함을 내던지지 아니함으로 인내에 인내를 거듭해야 한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디모데후서 2:12)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잘 버무려 인내의 양념을 바르고 성령님의 불길로 전후좌우를 잘 익힐 때 노릇노릇 구수한 향내 나는 거룩한 길을 잘 걷게 될 것이다. 그 노릇 잘 해야 왕 노릇도 멋지게 할 것이고 해처럼 빛난 새 하늘의 삶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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