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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체감계
임현희 2017-09-25 추천 10 댓글 0 조회 1609

가을은 그렇게 다가왔다. 해마다 기록을 새롭게 경신하는 듯한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을 온 몸에 땀으로 휘감고는 언제쯤 이 여름 귀신이 물러갈까를 생각의 늪 속에 붙들고 있었는데, 어느새 나의 긴 소매 위에 가을이 살포시 내려 앉아 있었다.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있으면 일 년 후에 다시 만날 기약을 하고 떠났으려니 했던 여름이 땀방울을 송송 앞세우며 아직도 내 계절이라고 말하고, 옷소매를 잠시 잠간이라도 걷어붙이고 있으면 가을은 스산하게 등장하여 내 세상이 맞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2:21)

 

   해질녘이 되니 여름과 가을의 모호함을 판정해 주겠노라고 심판을 자처하고 나선 존재가 있다. 그의 호루라기 소리는 귀뚤 귀뚤 귀뚜르르이다. 이쯤 되면 그 유명한 심판의 존함이 떠올려질 것이다. 그렇다. ‘귀뚜라미선생이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귀뚜라미를 통해 가을의 계절을 연상하겠지만, 분명코 몇몇의 사람은 보일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게다. 얼마 전에 교인의 아들과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 어학당에 와서 교수를 하는 여성과의 결혼주례를 맡아 하게 되었고, 예비부부가 인사차 목양실에 들렀다. 나는 유창한 한국어로 특별 구를 빼고 정식으로 등록된 50개주 중에 유학시절에 거하였던 시카고 도시를 품고 있던 까닭에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일리노이 주를 아는 체하며 어느 주 출신이냐고 물었더니 켄터키 주 출신입니다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나는켄터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후라이드 치킨이 떠올려졌고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만 내 입가에서 연결 문장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그랬더니 예비 신부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아브라함 링컨(Lincoln, Abraham,1809~65) 출신주예요.”하며 애국자적인 호소를 한 일이 있었다.

 

   계절의 변화와 톱니바퀴 걸음을 옮기던 24절기는 열여섯 번째 절기로 추분을 맞이했다. 삼백 육십 오 일을 몸담은 한 해는 추분점(秋分點)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그리고 추분을 휘감고 지나는 순간부터 점차 밤이 길어지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남 저음 목청으로 바뀌어 짐으로 비로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농사력에서는 이때부터 백곡이 풍성해 추수할 때라고 했고, 중국에서는 추분~한로까지 15일간을 우렛소리가 비로소 그치게 되고,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창을 막으며,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라고 했다.

 

   여름의 끈적임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을의 청명함이 점차 선명하게 다가온다. 하늘은 파랗게, 공기는 신선하게, 나뭇잎은 형형색색으로, 과일은 파스텔 톤으로 치장하고, 여학생은 시인으로, 귀뚜라미는 독보적인 연주자로 나선다.

 

   대개 가을에 우는 곤충은 단단한 부분을 비벼서 마찰음을 내는데, 수컷만이 소리를 낸다. 특히 소리를 내는 발음기는 대개 한 쌍의 앞날개로 그 날개의 뒷면을 돋보기나 현미경으로 보면 마치 쇠붙이를 문질러 깎은 줄처럼 조그맣게 솟은 뾰족한 돌기가 쭉 늘어서 마치 칼날처럼 생겼는데, 오른쪽 앞날개의 줄과 왼쪽 앞날개의 날이 서로 재빨리 맞비벼서 내는 소리가 곤충의 울음소리이다. 이는 마치 바이올린을 켜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변온동물인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온도에 따라 변한다. 2426일 때가 가장 아름답고, 이보다 높으면 소리도 높고 우는 것도 빨라지며, 반대로 이보다 온도가 낮아지면 소리도 낮고 우는 것도 느려진다고 한다. 가을이 깊음을 더할수록 귀뚜라미의 연주소리가 처량하고 쓸쓸하며 또렷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찍이 1960년대에 다양한 귀뚜라미 종에게 이름을 지어준 플로리다대학의 곤충학자 톰 워커는 모든 귀뚜라미는 꽤 괜찮은 온도계이다. 놈들은 온도에 비례한 속도로 날개들을 비벼대어 소리를 낸다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미국의 아모스 돌베어는 1897<아메리칸 내처럴리스트>란 학술지에 온도계 구실을 하는 귀뚜라미란 논문을 낸 것을 처음으로 돌베어 법칙이 생겨났다. 종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대략 섭씨 13도에서 분당 62회 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섭씨온도를 환산해 내려치면 25초 동안 우는 횟수를 3으로 나눈 뒤 4를 더하면 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몇 도일까? 아니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통해 얼마나 가을 감성을 체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집 어느 구석진 곳에 파송된 귀뚜라미가 오늘의 가을 향연에 주인공이 되어 막 시작한 연주를 듣는 순간, 나는 보일러가 아닌 귀이개가 떠올랐다. “귀 뚜르르~”아내에게 가을 감성 가득담긴 표정을 지으며 귀이개를 맡기고 무릎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지긋하게 감은 채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세어본다. 그 울음소리는 일정한데 숫자를 세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가물가물해진다. 이윽고 꿈속에서 뚫려진 귀로 청아하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너는 내게 결실을 체감하게 하는 이 가을의 소리를 내고 있느냐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음성을 듣는다. “다 됐어요. 다리 저려요. 빨리 일어나요!”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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