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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아름다운 것은
임현희 2015-07-06 추천 0 댓글 0 조회 1066

 어릴 적에 나는 어머니와 밀당을 한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실패의 아름다움을 목격했다. 점방에서 도톰한 실타래를 사 오신 어머니는 건너 방으로 나를 부르셨다. 그 날은 어머니 앞에서도 발을 쭉 뻗을 수 있는 특수를 누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나의 내어 뻗은 양쪽 엄지발가락에다가 실타래를 걸쳐 놓으시고는 실 끄트머리를 찾아 실패에 실실하며 예쁘게 감으셨다. 나는 긴장감을 가지고 엄지발가락을 곧게 세워 풀려지는 실의 향방에 따라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주면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한 사람은 알리라. 간지럽기도 하고, 자꾸 순서와 무관하게 발가락이 꾸무럭거려지기고 하고, 완급 조절을 못하거나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게 되면 발가락에서 빠져 나가 필 받은 어머니의 빠른 손놀림과 맞물려 실타래가 뒤엉켜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효도한 발가락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도 보면 볼수록 닭봉처럼 참 예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엄지발가락의 위력은 중심을 잘 잡게 만들고, 오래 서 있어도 끄떡없는 건강함의 한 요소가 되었다. 그 날, 어머니와의 실패에 실감기의 밀당 수입은 누룽지였다.

 

  그런데 우리의 생애 속에서 끊임없이 이웃하자고 다가서는 또 다른 의미의 실패가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는데,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고 그 선택이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그 선택이 부정적으로 작용된 경우를 우리는 흔히 실패라 부르며,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쫓아 다니는 낙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패를 무수히 반복한다는 양면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패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인내하고 감수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마음 아픈 실패는 견디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럴 때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실패 명언을 들여다보는 것도 실패를 감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실패가 나를 일어설 수 없게 짓누를 때, 노만 V. 필 박사의 말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만약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당신이 해야 할 첫 번째는 그 일을 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것을 다시는 거론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실패를 그냥 받아들이지는 마십시오.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 배울 수 있는 건 배우십시오. 절대로 그래, 나는 실패했어. 이제 아무 일도 못할 거야. 이제 더 이상 노력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이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패배의식은 당신을 영원한 실패자로 남게 합니다. 하나님께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부탁드리십시오. 그리고 인내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당신은 성공해 있을 것입니다.”

 

  실패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실패 앞에서 좌절하여 끝이라고 선포하지 않을 때 반드시 그 실패의 끝자락에 있는 성공을 만나게 된다. 어릴 적 실패 앞에서 엄지발가락 완급조절을 못해 실타래가 발가락에 빠져 나갔을 때 그것을 실패로 용납했다면 바느질 할 때마다 엉켜진 실타래라는 늪에서 실패의 실을 부분 부분 뽑아 사용하며 실패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엄지발가락에서 빗겨나간 실타래를 인내하며 잘 추슬러 제 위치에 올려놓게 되면 긴장감이 새롭게 생성되어 실패에 지그재그로 곱게 감겨진 성공의 실패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만일 누군가의 성공의 뒤안길을 들여 볼 수 있다면, 반드시 성공의 바로 직전의 상황은 실패일 것이다. 내가 실패로 인정하여 포기하지 않는 한 완전한 실패는 있을 수 없고 그 실패라는 것도 성공으로 가는 길목의 한 과정일 뿐인 것이다.

 

  잠간 백열등의 필라멘트를 발명한 에디슨을 들여다본다. 그의 조수가 선생님,필라멘트를 발명하려고 벌써 90가지의 재료로 실험을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결국 필라멘트를 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으니 중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고 제안했다. 그러자 에디슨은 무슨 소리야. 자네는 그것을 왜 실패로 생각하나. 우리들은 실패한 것이 아니고, 안 되는 재료가 무엇인가를 90가지나 알아낸 아주 성공적인 실험이었다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끈기로 그때 그가 실험하다가 버린 쓰레기 더미가 무려 2층 건물의 높이만큼이나 되었으며, 연구를 시작한 지 13일째 되는 날 2,399번의 실패를 거쳐 2,400번 만에 드디어 전류를 통해도 타지 않고 빛을 내는 필라멘트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에디슨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2,400번의 기회는 있을 것이다.”실패를 성공을 위한 기회로 삼는 자에게만이 2,400번째의 밝은 소망의 날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에디슨 이야기만 하고 끝을 맺으면 내가 좋아하는 야구가 실패로 여길까봐 야구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등 번호를 사용하는 단체 경기에는 영구 결번’(永久缺番, retired number)이라는 제도가 있다. 그 종목과 팀에서 월등한 기량으로 공헌한 선수가 은퇴하게 되었을 때에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 등번호를 다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멋진 제도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팀에는 여러 명의 영구 결번자가 있는 데 그 중의 하나가 등 넘버 3번의 베이브 루스(Babe Ruth)이다. 베이브 루스가 현역 선수 생활 동안 친 홈런은 무려 714개나 된다. 한 신문기자가 베이브 루스에게 질문하기를 당신은 정말 위대한 선수입니다. 어떻게 홈런을 714개나 칠 수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베이브 루스는 웃으면서 제가 714개의 홈런을 칠 수 있었던 비결은 1,330개나 되는 삼진 아웃을 당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사실 사람들은 베이브 루스를 떠올릴 때 홈런만 떠올렸지 삼진은 떠올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진이라는 실패의 계단에서 등 돌리지 않고 다시금 배트를 들고 홈 플레이트에 우뚝 서서 배트를 휘둘렀기 까닭에 홈런이라는 성공적인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실패할 수 있다. 실패 앞에서 고개들 사람도 없고요. 그러나 그 고개 숙임이 실패를 인정하고 포기의 눈물을 떨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씨앗을 찾는 인내의 담금질이 된다면 그 다음은 반드시 성공이라는 이름에 내 인생을 터치하게 될 것이다. 실패조차도 아름다운 것은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성공이라는 보화를 포장해준 예쁜 포장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의 주님은 디베랴 호숫가를 거니시며 누군가를 찾고 계시는 듯하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며 물고기를 잡으러 간 베드로를 비롯한 여섯 명의 제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우리 주님의 그곳 찾으심은 책망하고 핀잔을 주어 실패의 상처에 더 깊은 상처 자국을 안기기 위하심이 아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하시며, 지금은 실패중이 아니라 성공의 문턱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 의중을 깨달았는지를 이렇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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