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철모르고 피어나 마냥 수줍음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던 철쭉과, 선잠을 깨어 제 철 맞은 것처럼 기지개를 켜던 개구리가 뉴스 카메라에 잡혔다.‘이러다가 봄, 가을도 후딱 지나가는데 겨울마저도 모호해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던 차에 겨울의 눈도장이‘첫눈’이라는 이름으로 지면에 내려 앉아 살포시 하얀 자국을 내었다. 매서운 칼바람과 함께 찾아온 첫눈이건만 사람들은 그렇게도 시린 눈빛으로 첫눈에게 환호를 보낸다. 아직도 곳곳에는 점점 차가워지는 날씨 사이사이에서 햇빛만을 골라 몸에 채워가며 늦은 가을로 연장하며 버텨왔던 단풍들이었건만, 첫눈 좀 내린다고 한 순간에 홀딱 변하여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호하는 가을남자를 보니 이젠 정 떼야겠다 싶은지 이내 제 몸을 감싸 돌돌 말린다.
시인 정호승은 그의 시《첫눈 오는 날 만나자》에서 첫눈 오는 날의 감정 스케치를 이렇게 했다.“오는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문득 첫눈에 첫사랑을 놓친 아픈 사연이 떠오른다. 바쁜 일상에 각자의 자리에서 예쁜 사랑을 키워 간직하다가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고 했는데 글쎄 남자 쪽의 첫눈인지, 여자 쪽의 첫눈인지를 정확하게 명시해놓지 않아 첫사랑이 끝 사랑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에게‘첫눈’이라는 말은‘첫사랑’만큼이나 두근거림과 기쁨과 기대하는 감동을 안겨주는 가 보다. 첫눈이 첫사랑으로 오버랩(overlap) 되는 것은 아마도 감질나게 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 감질남이 내 마음 감정기저 저 깊숙이에 내려앉는 일은 많이 있다. 살짝 스치듯 내어 놓는 고백이 그렇고, 입을 크게 열지 않는 엷은 미소며, 입맛만 다시게 만드는 백화점의 시식코너 음식이 그렇다. 이렇게 감질나게 하면 더 맛있게 다가오고, 감질나게 내리는 첫눈은 가슴을 더 설레게 만든다.
우리는 계절적으로 연중 딱 한번 맛보는‘첫눈’보다도, 언제라도 그것도 더웁게 내 영혼에 내려앉는‘첫눈’의 감격을 되새김질해야 한다. 온갖 다양한 모양의 상형문자의 결정체를 가진 눈은 온 대지를 뒤덮고, 구석진 곳에는 칼바람을 통해 채색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다양한 대지의 색깔은 오직 하나, 흰색으로 카멜레온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온갖 셀 수도 없는 죄와 악으로 물들어 덕지덕지 주홍의 죄악 색깔만을 내었던 나의 영혼에 주님의 보혈이 한 번 싸악 하고 세척하자 금 새 흰 눈이 가득 내린 대지가 되어버렸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우리 주님은 내 영혼에 내린 첫눈의 추억을 떠올리며 또 다시 그곳에서 만나자고 성경을 통해 분명히 그 자리를 일러 주셨다. 주님의 보혈로 내 영혼에 첫눈이 내린 그 따뜻하고 포근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첫사랑을 만나러 가자. 눈과 같이 희어진 자리에 주홍빛 스며들지 않도록 언제나 첫사랑과 동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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