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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심방의 팡세(Pansees)
임현희 2014-03-15 추천 0 댓글 0 조회 731

바람막이 된 창가의 풍경은 분명 봄이다. 나도 모르게 봄기운을 흠향하기 위해 창문을 젖히고 바람과 대면하게 되면 아직도 봄의 온기로 달궈지지 않은 겨울이의 숨결에 멈칫해진다. 분명코 우수도 경칩도 지나 얼마 안 있으면 춘분이 다가서는데도 아직도 겨울의 찬 공기를 마음의 실오라기로 걸치고 있는 나에게 그것을 억지로 벗겨내기라도 하듯이 제법 많은 이른 봄비가 내린다. 겨울의 무게를 지닌추적추적하고 말이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반쯤은 봄비가 될 테니추적추적 보슬보슬이 맞는 표현일까?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11:14)

 

동토의 잔 기운이 남겨진 대지에 봄비가 기나긴 동면을 깨운다면, 교회는 대심방을 통해 영적인 잠을 털어내 버리고 생명의 날개 짓을 하게 된다. 대심방은 단언컨대 신나는 목회영역이다. 사랑하는 내 주님의 가르침과 명령을 받아, 사랑하는 이들과 근 2개월을 동행하며,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을 찾아 은혜로운 만남을 이루며, 화롯불 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구마 구워 먹었던 옛 시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얼굴과 마음에 묻혀가며 달콤새콤하게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기쁨과 웃음이 쏟아진다. 은혜는 넘쳐난다.

 

심방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소중한 목회 기술 중의 하나이다.‘심방은 한자어로 찾을 심(), 찾을 방()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각 가정을 찾아 방문하여 복과 생명의 말씀을 소망으로 안겨주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유익한 믿음의 걸음걸이다. 연중 심방은 소중함으로 지속되겠지만, 어느 한 시기를 정해 교회에 등록된 모든 성도들의 가정을 날 잡아 방문하게 되겠기에대심방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에게 최고의 잊지 못할 심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 보좌를 이 땅으로 향하셔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나에게 찾아오신 성육신 사건일 게다. 우리는 주님의 심방 까닭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고, 예수님 말씀으로 가정 행복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으며, 예수님 안에서 영영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심방사역은 하나님이 아픔과 슬픔을 겪고 있는 인간을 찾아오시는 고귀한 사역이며,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이 귀한 사역을 위임해 주시고 거룩한 심방의 사역을 나누어주신 것이다. 따라서 심방사역은 하나님의 위임사항이며 믿음과 사랑과 순종함으로 이행할 때 사역자의 손과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 주시는 것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예수님은 심방하시면서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셨다. 첫 번째 심방은, 버젓이 사망의 철장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는데 그것을 모르고 죽은 예수님을 찾아 향유를 부어드리려 왔건만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으로 울고 서 있는 마리아를 심방하셔서 절망과 탄식과 눈물을, 환희와 기쁨과 웃음으로 되찾아 주셨다. 두 번째 심방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자들이라는 누명을 쓰고 모조리 체포될 것이라는 소문의 두려움에 젖어 다락방에 모여 여러 겹의 문고리와 마음 고리를 잠가두고 새가슴 콩닥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자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심방하셔서너희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선포해 주심으로 모든 두려움과 공포와 죄책감과 불안을 몰아내 주시고 그 자리에 평안을 주입해 주셨다. 세 번째 심방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이루어졌다. 일말의 책임감으로 할 줄 아는 그물질을 통해 아우들의 입에 풀칠을 해 주려던 베드로는 밤새도록 팔이 빠져나갈 정도로 그물을 던지고 또 던져보았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여 실패의 스산한 새벽바람이 온 몸을 휘감은 그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물을 가득 채워 주셨고, 손수 조반을 챙겨 주시어 추운 제자들의 마음도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셨다.

 

이렇게 성도들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 사모함으로 기다리는 심방의 자리에는 다양한 인생의 무게가 무겁게 내려 앉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처방은 오직 주님의 생명과 사랑이 가득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가정에 이미 기도함으로 포장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운반하게 되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다. 형통의 역사가 일어난다. 영적 새 봄의 기운이 용솟음친다. 그래서 신난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심방하는 가정에 성령님의 충만함을 고대하며 심방대원들은 뜨거운 기도의 향을 올려드리며아멘의 기합을 넣고, 찬송의 거친 능력의 숨결을 토해낸다. 십자가의 능력이 임하기를 고대하는 마냥 찬송가를 부를 때면 연신 반동하게 되는데, 어떤 분은 전후로 흔들며 찬송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가운데 수직적인 관계를 잇대고, 또 다른 분들은 좌우로 흔들며 찬송함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수평적 관계를 이어준다. 그리하여 둘이 교차되어 십자가가 형성되고 주님의 보혈의 은혜가 넘쳐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은혜로운 성도들의 영적 반동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 반동조차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되어 얼마 되지 않은 즈음, 대심방을 하는데 일반주택에 사시는 분들은 대심방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기 위해 방바닥을 불가마로 만들어 놓곤 했다. 그 공간 중에서도 담임목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아랫목을 내어 주신다. 따뜻했다. 그리고 뜨거웠다. 이듬해 구역장회에서 공지사항 중에 우스갯소리로방바닥 온도 조절이야기가 거론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가정의 따뜻한 마음을 끌어안고 서로 발설을 안 해서 그렇지 많은 분들이 곤혹스러웠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어떤 분은 심방 가방을 가만히 엉덩이 밑에다 집어넣기도 했다지만, 많은 수긍 표는인간 메트로놈’(metronome) 조절이었다. 메트로놈은 좌우로 반동을 하며 음악의 빠르기를 재는 기구이다. 마치 메트로놈이 움직이듯이 찬송가를 부를 때 대부분 한 박자씩에 맞춰서 왕복을 하는데 한 쪽에 두 박자 이상씩 머물다가 반대쪽으로 이동을 한단다. 물론 그 사이에 반대쪽 엉덩이를 쓰러지지 않을 만큼 방바닥에서 띄워서 공간을 만들어 열기를 식히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감사하자고 말했다. 바울과 실라는 차디찬 지하 감옥에서 찬송과 기도로 온도를 높였는데 우리는 이미 그 기본을 깔아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고대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느 시골교회에서는 추운 날 심방 오셨다고 목사님께 콜라를 뜨끈하게 끓여서 한 사발 내 놓으셨다는데 그 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이야기가 개진되다 보니, 옛날 사모관대 쓰고 연지곤지 찍어 바르고 집안 마당에서 전통 혼례를 하던 시절에는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어린 신부 어른 만든다고 방바닥을 충분히 달궈놓고 신부를 아랫목에 한 동안 앉혀놓고 지켜보는 이상한 풍습이 있는 동네도 있었다고 한다. 그 대상이 되었던 권사님들은지금 방바닥은 방바닥도 아니라고 입을 모으신다.

 

아주 연로하신 권사님은 하나님의 심방해주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는 글자를 총동원하시어 삐뚤빼뚤 제목을 쓰셨다.‘신방감사라고. 그런데 철자가 틀렸노라고 지적하거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권사님의 사모하는 마음에는 말씀으로 은혜 받아 신랑 되신 예수님과 믿음의 신방을 꾸려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예쁜 소망이 대심방 속에 기대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파스칼의팡세(Pansees)는 그의 유족과 친척들이 파스칼의 종교 및 기타 주제에 대한 파스칼의 팡세(생각)가 담겨진 글 묶음을 모아 기독교를 설명하고 전도하려는 목적에서 단상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주님의 심방하심과 말씀 주심으로 오늘날에도대심방의 은혜로운 팡세가 많이 전개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입술로 전해지는 팡세로 인하여 예수님 이야기가 이 땅에 가득하여 봄의 새 생명이 약동하는 기운보다 더 기운 찬 하늘의 생명의 기운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소원한다. , 다음 주에는 어느 구역 심방이더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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