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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름
임현희 2013-10-02 추천 0 댓글 0 조회 763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중화요리 집에 갔다. 중화요리에는 느끼하지 않도록 아삭아삭 잘 익은 김치와, 은행잎처럼 노랗게 물든 단무지가 나온다. 맛있는 면발을 시장함의 동력으로 몇 번후루룩하는 사이에 단무지 그릇이 바닥을 보이는 찰나, 어머니께서여기 아가씨! 밑지 좀 더 주세요.”아가씨는 밑지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 해 잠시 머뭇거리자, 어머니는다꽝이요!”아가씨는, 어머니 다꽝이 뭐예요?”하고 오히려 되묻는다. 우리 부부는 대략 난감한 웃음과 함께밑지와 다꽝은 어르신들이 단무지를 친숙하게 부르는 용어입니다라고 동시통역을 해 주자 그제 서야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꽝은 무로 만든 일본식 짠지인 것이고,‘밑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밑반찬이 되는 음식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까? 우리 가족은 줄곧 단무지의 세 가지 이름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게 되었고, 그 어간에 면발은 행복한 소화의 여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서고금을 무론하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고유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결부되어 자기를 수식해 주는 이름들도 가지고 있다. 탈무드에 보면, 제자가 랍비(rabbi)에게 물었다.“스승님,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이름을 몇 개나 가지게 될까요?”랍비는어떤 사람이든 평생 동안 적어도 세 가지 이름을 갖게 된다. 첫째는 태어나면서 부모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요, 둘째는 친구가 붙여준 우정이 담긴 별명과 같은 이름이며, 마지막으로는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점수를 매기는 명성이라고 하는 이름이 있다고 대답했다.

 

  코카서스 인종에 속하는 소수의 유랑 민족인 집시(Gypsy)들은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항상 이동하면서 생활을 하는데, 미신적이고 쾌활하고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져, 점쟁이, 가수, 말 장수 따위의 일로 생계를 꾸미는 그들에게도 저마다 이름을 세 개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우리처럼 공식적인 이름, 두 번째는 가족들끼리만 사용하는 이름, 세 번째는 비밀 이름이 있다. 집시들은 태어나면 곧바로 흐르는 물에서 세례를 받는데, 그때 엄마가 아가의 귀에 대고 귓속말로 비밀 이름을 말해주는데, 비밀 이름을 짓는 것은 이름을 모르면 아이를 꾀어낼 수가 없기에 악귀들을 속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비밀 이름은 평생 부모랑 자기만 알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평생을 함께 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에게는 귓속말로 알려 준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비밀 이름은 보통의 사람들, 아니 악귀가 상상도 못할 엉뚱한 이름 일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 부부의 비밀 이름을 짓는다 할 때, 아내에게는뚱뚱보라고 하거나, 나에게는못 생긴 남자라고 지어 놓는다면 지구촌 어느 누구도 평생 동안 비밀 이름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27:5)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름, 곧 다른 사람이 나를 지칭해서 부르는 이름은 우리의 사람됨을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한사람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그를 동일성에 있어서 불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행세하는 사람은 자기의 동일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흔히 이름을 버려서 과거의 자기와 현재의 자기의 동일성과 정체성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름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자아의 동일성이 없는 사람으로서 몸도, 마음도, 환경도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가는 사람이다. 그는 참다운 의미의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라져서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은 아이덴티티(identity) 즉 자기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름에 따라 타인에게 무언가 기대할 수도, 자기도 모르게 이름에 따른 책임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고대로부터 이름은 곧 그 존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시되어왔으며, 어떤 사람은 사는 방향을 유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의도된 이름으로 아명, 관명, , , 시호를 붙여주기도 했는데, 아명은 최대한 그 사람을 드러내지 않게 해 질병이나 재액에서 드러나지 않기 위해, 관명은 그 사람이 어른이 되어 새로운 존재로서 사회에 편입되었음 알리기 위해, 자는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본명이 함부로 불리지 않기 위해, 호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나타내기 위해, 시호는 그 사람이 살았던 생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인들에게는이름이 곧 운명(Nomen est omen)’이라는 격언이 있고, 작명가들에게 나름대로 통용되는 철칙이 있는데, 부르기 어려운 이름을 피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그 사람을 기억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제인과 재인처럼 발음은 똑같지만 일반적인 단어와 철자가 약간 다를 경우 읽고 쓰는 언어능력이 떨어질 수 있고, 자신감도 결여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여성 형 이름을 가진 여성보다 중성적 이름을 가진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름과 사회적 성공에 대한 통계가 많이 나와 있기에 아이들 이름을 심사숙고해서 지어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하며, 심지어 야구계에서는 이름이 K로 시작되는 선수는 삼진아웃을 당할 확률이 높다는 정설까지 통용되고 있다. 자기 이름에 대한 자신과 타인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그의 인생에 은연중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우리 교회 아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내 머릿속에 잘 정된 되어 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기도하며 작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기도하면서 아이들의 이름에 담긴 뜻풀이로 하나님께 간구하기도 한다. 한 성도가 늦둥이 아들을 낳아 목사님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목사님은 여러 날 고심하다가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떠 올리며 발할 발() 빛 광() 자를 써서발광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뜻은 참 기막힌데 혹여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성장하지는 않았을 런지 살짝 염려가 된다. 또 어떤 집에서는 아들만 연거푸 넷을 낳다가 다섯째에 딸을 낳자 귀한 여아라는 뜻으로 이름을귀녀(貴女)’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이 방 씨 였으니 이를 어찌하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60:1)

 

  꼬나가 짓고, 루루지의 그림을 담아 아이들에게 바르고 고운 인성을 심어주는 세 개의 이름을 가진 고양이라는 동화집이 있다. 이 책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을 잃은 고양이의 이야기가, 세 개의 이름을 거치면서 참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동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타인에 대한 양보와 배려, 생명의 소중함,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과 정직,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 등을 배우게 해 주는 맛있고 착한 책이다. 그렇다.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땅 위에서 이름값을 하며 값어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에는짜리가 있다. 돈을 세는 단위 명사에 붙어서 그만한 값을 가진 물건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굳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값을 따지자면예수님 짜리가 아니겠는가! 듣고 보니 이렇게 존귀한 자이구나라는 생각에 앞서, 그 이름값을 감당함으로 가치발휘를 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부끄러운 마음에 난 데 없이 안방에서 쥐구멍을 찾게 된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에게는 땅의 이름과 더불어 성도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아름답고 거룩한 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을 부끄럽지 아니함으로 값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애가 복 됨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형형색색의 단풍미소를 일으켜 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제 나는 하나님께 밑지도 아니고, 다꽝도 아니고, 단무지라는 이름으로 정확하게 불리기를 원한다. 그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의 내용으로 각인되어지느냐에 따른 결과물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4:12)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29:2)

 

  지금부터라도 당장 세 가지 이름에 연연하지 말고, 먼저 나의 이름 석 자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진지하고 무게 나가는 삶을 살도록 애써보자.“아니, 성이남궁이라 넉 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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