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1일(토) - 182째날/ 사 21-24장/ 환상의 골짜기 예루살렘
☞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곧 남 유다 백성이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21장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심으로써 남유다를 위로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22장은 남유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며, 이 장에 나오는 '환상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지칭합니다. 남유다는 앗수르를 막기 위해 애굽과의 동맹 정책과 함께 예루살렘을 요새화하고 있었습니다. 즉, 군사 강화 정책을 시행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요새화를 위해 성벽 곁에 허름한 집을 짓고 살던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다 철거하므로 가난한 이들이 삶의 처소를 잃고 전쟁 준비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것이니,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그만두라고 말씀하십니다. 히스기야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성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모범을 보이고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여 하나님을 의지하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23장은 강력한 해군력을 앞세워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큰 경제적 풍요를 이룬 두로에 대한 심판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사야 24장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는 심판이 임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에게는 구원의 찬미가 울려퍼질 것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 7월 2일(주일) - 183째날/ 사 25-29장/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 남유다를 향해 탄식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희망을 놓아버린 그곳에서부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선포하십니다.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마지막 날에 대한 환상을 보았던 이사야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세상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압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빈궁하고 환난당한 자들을 보호하시고 포학을 행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제국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이사야 27장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죽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소생시키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이사야를 통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포도원지기기로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를 심고, 모든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맺은 것은 극상품 포도가 아니라 들포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이스라엘의 포도원지기를 자청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기대하시며, 때를 따라 물을 주고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사야가 계속해서 반복하는 결론은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근본 마음이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 7월 3일(월) - 184째날/ 사 30-35장/ 의로 통치하는 왕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인류를 공의롭게 통치하고 정의로 심판하시며 의로 다스릴 한 왕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귀담아 듣지 않는 남유다의 위정자들은 하나님 대신 애굽과의 동맹을 선택했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을 앞두고 남유다는 참된 의지처인 하나님을 선택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애굽의 힘에 기대어 나라의 위기를 모면하려 한 것입니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사 30:7)라는 이사야의 선포처럼 애굽은 남유다를 도울 힘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궁극적ㅇ니 문제해결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남유다 백성은 자신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앗수르가 아니며,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대상도 애굽이 아님을 알아야 했습니다.
이사야는 앗수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조국 남유다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난미께서 이사야의 기도에 구원의 응답을 주십니다. 이사야 35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미래의 청사진으로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 가운데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이루시는 하나님은 구속의 하나님이며, 이를 누리는 자들은 구속함을 입고,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됩니다.
▣ 7월 4일(화) - 185째날/ 왕하18:13-37, 사36장/ 남 유다를 위협하는 앗수르
☞ 예루살렘을 에워싼 앗수르의 장수 랍사게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만 의뢰하기로 결심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고 끝내 애굽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렇게 애굽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조공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유다를 침략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앗수르는 배신자를 처단하러 온다는 구실을 내세워 남유다로 쳐들어옵니다. 얼마 가지 못해 예루살렘 성을 제외한 전 국토가 앗수르에 점령당하고 맙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에게 "내가 범죄하였나이다"하고 빌며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아"라고 말합니다. 이에 앗수르 왕은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합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던 은과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내어 앗수르에 바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앗수르는 예루살렘마저 정복하기 위해 다시 남유다를 치러옵니다.
앗수르가 장수 랍사게가 예루살렘 성이 보이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히스기야 왕에게 빨리 항복하고 성문을 열라고 소리칩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하기 서슴지 않았습니다. 남유다의 성읍 중 예루살렘 성만 남은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장수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 7월 5일(수) - 186째날/ 왕하19장, 사37장/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구원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큰 위기 가운데에서 건져주십니다.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히스기야가 드디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앗수르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예루살렘에 닥친 재난을 여호와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당하는 현실에 가슴 아파합니다. 그리고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묻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하나님을 모욕한 말을 들으시고 그들의 위협 앞에 놓인 남유다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상황이 역전됩니다. 마음을 돌이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 약속대로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왕의 주력 부대 18만 5천 명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립니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던 앗수르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예루살렘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후 앗수르 제국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됩니다.
▣ 7월 6일(목) - 187째날/ 왕하20장, 사38-39장/ 히스기야의 병과 회복
☞ 히스기야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생명을 연장받는 은혜를 누리지만, 자신을 찾아온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교만했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앗수르 제국 이후 또 다른 제국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신 바벨론 제국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 물론이요, 고대 근동 전체를 다스리려는 야먕을 품은 므로닥발라단이 고 바벨론의 영화를 꿈꾸며 주변을 장악해가고 있었습니다. 피정복지에 대한 앗수르 제국의 지배방식이 강력하고 혹독했던 것에 비해 바벨론은 겉은 부드럽지만 속은 더욱 철저한 제국이었습니다.
한편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앗수르를 물리친 후 큰 병에 걸렸습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곧 죽을 것이라고 통보하자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통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습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의 병문안을 빌미로 사신을 통해 앗수르를 물리친 히스기야를 칭송하는 편지와 예물을 보냅니다. 이를 받고 마치 자신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친 것처럼 교만해진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이 보낸 특사에게 예루살렘 왕궁 안의 모교회안내든 것을 다 보여줍니다. 이는 이후 바벨론에게 남유다를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되고 맙니다.
▣ 7월 7일(금) - 188째날/ 사40-42장/ 하나님의 위로
☞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아브라함을 벗이라 부르시며 야곱을 택하여 부르셨던 하나님뿐입니다.
이사야의 심판 예언이 이사야 40장을 분기점으로 구원의 약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남유다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위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어떠한 상황에 처해져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힘을 잃지 말라고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셨으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참으로 의지해야 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그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시고, 안타까워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이사야를 통해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돌보시고 사랑하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 7월 8일(토) - 189째날/ 사43-45장/ 이스라엘의 회복
☞ 많은 죄악을 저지른 그들을 연단시켜 하나님의 민족으로 다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는 참 소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예언이 이어집니다. 이사야는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 남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며 현재의 고난을 인내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위협과 환난으로부터 건지시고 그들을 용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명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그들을 가르치고 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며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을 일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기다리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직접 낳고 기르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키십니다. 남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렸던 이사야는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하나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온 인류의 구원을 밝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의 날과 더 나아가 구원자를 통한 모든 열방의 구원, 곧 당신이 세우신 계획의 성취를 약속하십니다.
▣ 7월 9일(주일) - 190째날/ 사46-50장/ 이스라엘의 구원
☞ 하나님은 열방의 압제를 받는 남유다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은 물론이요, 이 땅의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남유다 백성의 어리석은 생각을 돌이키시기 위해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의 죄악을 밝히 드러내어 고침으로써 참된 소망과 구원을 허락하시려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니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징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징계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임을 알게 됩니다. 인생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인 것입니다.
이사야는 비록 현재의 상황이 흑암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주의 종은 구원의 사명을 다할 것임을 거듭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선언되는 구원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현실적인 고통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라고 말씀 하시며 구원의 확신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께로 돌아가는 길뿐입니다.
▣ 7월 10일(월) - 191째날/ 사51-55장/ 고난 받는 종
☞ 건축자의 버린 돌 같은 구원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모퉁이의 머릿돌을 삼으실 것이요, 놀라운 은혜의 사건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51장에서 이사야의 선포는 다시 하나님의 위로로 돌아옵니다. 이사야는 특별히 아브라함의 예를 들며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 부부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셨음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이사야는 약 7백년 후에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사야 9장에서는 강한 메시아, 전능하신 예수님을 묘사했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런데 이사야 53장에서는 인간들의 잘못을 책임지기 위해 고통 앞에 서신 메시아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이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은 영원한 구원을 성취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로, 인류 전체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청사진입니다.
▣ 7월 11일(화) - 192째날/ 사56-59장/ 참된 회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신은 말씀대로 살기 위해 땀을 흘리며, 그분을 사모하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려는 삶의 자세입니다.
이사야 56장에 이어 5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우상숭배를 음행에 빗대어 책망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그들뿐만 아니라 열방까지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 목적을 잊은 채 하나님을 떠나면 그들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58장은 금식과 안식일이라는 두 종교적 의례를 들어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식적 행위에 불과한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생활은 더 이상 하나님께나 이웃들에게 기쁨이 되지 못함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려지는 예식이 아닌 진정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예식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9장을 통해 자신들을 구원해주지 않는다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열방의 침력 앞에 그들을 내버려두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그들의 멸망과 현재의 고난은 바로 그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포하시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겸손히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죄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 7월 12일(수) - 193째날/ 사60-63장/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
☞ 이스라엘의 환난에 동참하시며 그들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구원의 소식을 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 위로와 희망을 주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내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평화와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슬픔과 근심이 있는 살마들에게 기쁨이 전해지고, 황폐하였던 이스라엘 땅이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사야 61장의 예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 그리고 그분의 사역을 통해 이 땅 위에 실현됩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영광이 회복된 구체적인 모습과 함께 시온을 회복할 메시아의 사역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공의가 횃불 같이 나타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 확신으로 예루살렘을 화려한 시온 성으로 회복시킬 하나님의 종에 대해 소개한 것에 이어, 예루살렘을 '헵시바'(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와 '쁄라'(결혼한 혀자)라고 부릅니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백성의 성읍이 될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곁에 있는 이들에게 소망을 불어넣어 주는 이사야의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 7월 13일(목) - 194째날/ 사64-66장/ 영광과 평화의 청사진
☞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된 후,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과 영광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렸던 하나님의 종 이사야의 기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 곧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이사야가 백성의 죄를 중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악을 행하고 심판을 받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사야가 올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새로운 날을 준비하고 계시리라는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이사야가 외치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멸망할 것이지만, 그 가운데서 그루터기 곧 남은 자들은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죄에 따른 심판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결국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열방의 회복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향한 탄식으로 시작했던 이사야의 에언이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희망을, 죄악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내리는 것입니다. 형식뿐인 제사가 드려지는 현실을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는 조의 대가인 심판도 말씀하셨지만, 시온의 영광과 함께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을 더불어 약속하십니다.
▣ 7월 14일(금) - 195째날/ 미1-3장/ 영광이 빠저버린 시온 산성
☞ 약자들에 대한 힘 있는 자들의 횡포가 만연해 있는 시대를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미가는 이사야와 거의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패역하고 불의한 길에 서 있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향해 심판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은 남유다의 수도로 다윗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부터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악이 성행했던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먼저 우상숭배를 비롯한 종교적인 죄악을 고발하고, 곧이어 가난한 민중들을 향한 권력자들의 악행과 사회적인 죄악상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는 우두머리,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제사장, 돈을 위하여 점치는 선지자들의 죄상을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지도자들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 각 지역의 좋은 것들을 수도로 공수하고 있음도 비판합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발전해가는 도시가 아니라 백성의 고혈로 세운 도시가 되어갔습니다.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라는 미가의 외침은 예루살렘의 죄악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외침이었습니다.
▣ 7월 15일(토) - 196째날/ 미4-7장/ 영광이 회복될 시온 산성
☞ 미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이 넘쳐날 거룩한 도시에서 이스라엘이 그에 합당한 백성으로 사는 놀아운 계획을 선포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어서 율법이 선포되어 강대한 나라가 되는 예루살렘의 미래상을 예언합니다. 하나님께서 꿈꾸며 계획하시는 그날의 모습이 선지자 미가를 통해 백성 가운데 선포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겨운 시간을 보낸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소망의 날을 말씀하십니다. 그날에는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이 넘쳐나는 그 거룩한 도시에서 그에 합당한 백성으로 살아야 할 사명을 선포하며, 지금의 죄악된 모습에서 돌이킬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은 미가 5장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큰 자가 나올 것이라는 이 약속의 말씀은 그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백성에게도 옛 열조에게 베푸셨던 은혜를 동일하게 베풀어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린 미가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라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7월 16일(주일) - 197째날/ 왕하21-23장/ 왕정 총결산
☞ 므낫세 통치 시절,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던 왕정의 페해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5백 년 왕정을 총결산하는 시점이 다가옵니다.
이사야와 미가가 활동했던 남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므낫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므낫세의 통치 기간은 왕정 제도의 페해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행위가 얼마나 악했는지, 하나님께서는 므낫세를 향해 변개되지 않을 멸망을 선포하십니다.
므낫세가 죽고 그 아들 아몬이 왕위에 오르나, 그도 아버지의 행위를 따라 악을 행하자 신복들이 반역을 일으켜 그를 죽입니다. 그러자 백성이 다시 그 반역 세력들을 폐하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삼습니다. 요시야는 8세라는 어린 아니에 왕이 되었지만, 장성한 후 그의 조부나 아버지와는 달리 하나님의 뜻대로 국가를 치리하고자 노력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사무엘 시대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유월절을 다시 지켰습니다. 요시야는 남북 분열 이후 세워진 전체 40 여 명의 왕들 가운데 가장 성실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요시야는 애굽 왕 느고가 전쟁을 위해 북쪽으로 올라가고자 유다 땅을 지나갈 때, 이를 막기 위해 나갔다가 전사하고 맙니다.
▣ 7월 17일(월) - 198째날/ 습1-3장/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 역사의 어두움 속에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찾으며 공의와 정의를 구하는 의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스바냐의 말씀이 선포된 때는 다윗 이후 이스라엘 왕정 가운데 하나님의 율법이 가장 잘 지켜지던 요시야 왕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의 예언 내용은 초지일관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 백성의 우상숭배와 죄악을 꿰둟어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스바냐는 사람들의 죄로 인해 모든 땅 위에 임하게 될 여호와의 큰 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으며, 이방 나라들도 그 대상이 됩니다. 다만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수 있습니다. 스바냐는 온 열방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어두움 속에서도, 주의 명령을 따른다는 이유로 온갖 고난을 당하는 이들에게 끝까지 인내하기를 당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변함없는 의로움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실 놀라운 계획을 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다윗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로서 예루살렘을 사랑하시며, 예루살렘을 인하여 기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아름다운 관계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 7월 18일(화) - 199째날/ 합1-3장/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크신 경륜 가운데 세계를 움직이시며 그 가운데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기쁨의 찬양이 넘쳐나옵니다.
하박국은 악인들의 죄악상과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호소합니다. 하박국은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왜 이런 현실을 그저 바라만 보시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해결하고 고치기 위해 바벨론을 준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하지 못한 하박국의 의문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박국이 보기에는 심판의 도구인 바벨온이 이스라엘보다 더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악인이 저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라고 다시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 실현될 하나님의 공의를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비록 지금 눈앞에 나타난 현실이 정의롭지 못하여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공의로 다스린다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대답을 들은 하박국의 입술에서 찬양과 기도가 울려 퍼집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에게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오직 여호와만 있으면 기쁨이 가득하다는 고백입니다.
▣ 7월 19일(수) - 200일째날/ 나1-3장/ 열방을 향한 공의
☞ 요나를 통해 회복의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죄악과 포학을 향하던 앗수르 제국을 향해 엄중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스바냐가 남유다를 향해 예언할 때, 나훔은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에 대해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150여 년 전 요나의 선포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한 심판을 뒤로 미루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그들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제국주의를 펼치며 북이스라엘과 주변 나라들을 망하게 한 것입니다. 이에 나훔 선지자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향해 멸망을 선포합니다.
나훔은 야만적으로 주변의 민족들을 학대하는 앗수르 제국을 이곳저곳에서 닥치는 대로 사냥하는 사자에 비유합니다. 오직 심판자는 하나님 한 분뿐인데, 그들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교만하게 행하고 포학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아무리 크고 강한 제국이라 할지라도 세계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다면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앗수르는 점차 세력이 약해지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합니다. 범람한 물로 인해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는 나훔의 예언대로 니느웨 성은 홍수로 인해 일부가 파괴되었고, 그 성벽의 무너진 틈으로 바벨론인들이 침략함으로써 완전히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 7월 20일(목) - 201일째날/ 욜1-3장/ 마음을 찢으라
☞ 임박한 여호와의 날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해야 할 생명의 길은 진실로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활동 시기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브두엘의 아들 요엘은 임박한 환난과 그에 따른 회개를 촉구한 선지자였습니다. 요엘의 메시지는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스스로 재앙을 부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재촉하는 내용으로, 이는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로 인하여 그 땅에 징게를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라도 금식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면 그 재앙을 돌이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죄악으로 자신을 더럽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그곳에 하나님의 구원이 실현되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죄악의 길로 치닫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입니다. 특히 각 나라들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셔서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 7월 21일(금) - 202일째날/ 왕하24장, 렘1-3장/ 남유다에 대한 설득과 심판
☞ 심판이 확정되어 멸망의 문에 점점 다가서고 있는 남유다에, 예레미야가 마지막 설득을 위해 보냄을 받습니다.
요시야가 애굽과의 싸움인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자 백성은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여호아하스는 3개월 만에 애굽 왕 느고에게 잡혀 끌려가고, 뒤를 이어 요시야의 큰아들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릅니다. 여호야김은 왕위에 오른 후 3년간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다가 중단합니다. 그러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예루살렘에 올아와 여호와의 성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갑니다. 이때 끌려간 사람들이 다니엘을 비롯한 1차 바벨론 포로들입니다. 그 후,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자 느부갓네살이 또다시 예루살렘으로 와서 여호야긴은 물론,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을 모두 잡아갑니다. 이것이 2차 베벨론 포로입니다. 그리고 남유다 땅에 남은 백성을 다스릴 자로 요시야의 막내아들인 맛다니야(시드기야)가 세우집니다. 그가 바로 남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한편,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해온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은 이미 결정되었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습니다. 예례미야에게는 남유다의 멸망과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예언해야 하는 힘든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 7월 22일(토) - 203일째날/ 렘4-6장/ 패역한 남유다
☞ 예루살렘의 멸망을 막을 만한 의인 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남유다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토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주셨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외침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줄을 몰랐습니다. 예루살렘의 깊어가는 죄악은 예레미야에게 깊은 슬픔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나그네와 과부를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연약한 이웃을 압제하였고, 죄 없는 사람을 억압하였으며,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의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성전에 나가기만 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들과 백성을 향해 예레미야는 혹독한 비판의 설교를 합니다.
▣ 7월 23일(주일) - 204일째날/ 렘7-9장/ 주의 계명을 떠난 이스라엘
☞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 하나님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백성을 향해 예레미야는 마음을 찢는 아픔을 호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그 길을 바르게 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을 하며 도둑질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바알을 숭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간구하지도 말라 하십니다.
예레미야 9장은 예레미야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해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목놓아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짓과 죄악에 더 깊이 빠져드는 백성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듯이, 예레미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과 민족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임박한 멸망의 시간이 다가오자, 그들 나름대로의 지혜와 용맹과 부를 그 해결책으로 삼으려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멸망의 날에 그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분이 원하시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 7월 24일(월) - 205일째날/ 렘10-13장/ 약속을 깨뜨린 이스라엘
☞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특권과 사명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불순종의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언약을 지금까지 붙들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자 애쓰셨던 모습을 상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열조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우상을 섬겼던 전철을 그대로 되풀이하여 성읍의 숫자만큼 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함으로써 징벌을 받았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또 다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자행하며 온갖 죄악을 저지르는 백성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했던 예레미야가 예레미야 12장에서는 그들이 전혀 회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형통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마치 불의한 자의 형통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던 하박국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 내리라"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뽑아냄이 끝이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여 돌아오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히는 자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7월 25일(화) - 206일째날/ 렘14-16장/ 마음을 돌이키라
☞ 거짓을 행하며 헛된 것을 좇았던 죄악을 인정하고 마음을 돌이키는 날, 비로소 이스라엘은 어둠을 밝히는 환한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발길을 자꾸 그 길로 행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기억하여 그 죄를 발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들은 기근과 칼이 이르지 않을 것이며 확실한 평강이 있으리라고 거짓 예언을 합니다. 이러한 거짓 예언으로 인해 예레미야가 슬픔으로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반드시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참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바라심입니다. 아무리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선지자를 보내도 행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이 징계를 통해서라도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여호와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 날의 피난처"라고 고백할 날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확정하셨다는 것만을 강조하다보면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돌아오기를 끝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한결 같으심을 알게 됩니다.
▣ 7월 26일(수) - 207일째날/ 렘17-20장/ 남유다의 죄
☞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고, 인신제사의 풍습까지 자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남유다의 현재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을 방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과 나라를 다스리시며 세우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했던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하기 위해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는 일에도 순종합니다.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듯이,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온 삶을 바쳐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했지만, 이것은 그에게 박해와 핍박으로 되돌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조국의 멸망을 선포해야만 했던 예레미야의 사역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인하여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고 있는 자기 사정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하기를 멈추고자 하면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입니다.
▣ 7월 27일(목) - 208일째날/ 렘21-23장/ 예레미야의 설득
☞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항복하고 70년의 모든 생활을 달게 받으면서, 조상 적부터 반복하고 있는 죄악을 회개하라고 간절히 설득합니다.
남유다의 멸망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선포되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징계에 순종하여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남유다 멸망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이제 더 이상 공허한 소리가 아닙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급전을 보냅니다. 지금까지 줄곧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해왔던 시드기야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알고 있었기에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끝까지 예레미야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복를 거두합니다.
예레미야 23장에는 미래의 왕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아첨과 거짓된 축복으로 백성을 유혹하는 왕과 제사장들을 폐하고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땅의 지도자들에게서 희망을 거두고 메사아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 7월 28일(금) - 209일째날/ 렘24-25장/ 바벨론 1차 포로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
☞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을 훈련시키실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끌려가는 이들을 좋은 무화과라고 하십니다..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길임을 역설한 예레미야의 선포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백성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죄를 짓고도 호개할 줄 모르던 백성은 예레미야를 강대국인 바벨론 제국의 편을 들어 나라를 배신하는 사람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하고도 확실했습니다. 비록 예레미야의 선포가 거짓 선지자들과 백성으로부터 거부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무화과 두 광주리 환상'을 보여주셔서, 그로 하여금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1차로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는 백성은 위기를 모면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바벨론에 끌려간 이들이 좋은 무화과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백성은 나쁜 무화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그곳에서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잡혀간 그 사람들을 희망의 씨앗으로 삼고 계십니다.
▣ 7월 29일(토) - 210일째날/ 렘26-28장/ 거짓 선지자들과 싸우는 예레미야
☞ 거짓 선지자들은 고난 없는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거짓 예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 70년의 교육기간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바벨론에 가서 70년간 고난의 시기를 참고, 훈련의 기간을 견디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다시 세움 받으리라는 것이 예레미야 선포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성전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남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들은 "네가 반드시 죽어랴 하리라"라고 말하며 예레미야에게 살기등등한 위협을 가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메게 하면서까지 하나님의 계획을 이스라엘과 주변 열방에 전파하십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을 비롯한 남유다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말에 환호를 보냈습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그 시대의 백성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유다의 회복을 전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된 믿음과 허황된 복을 남발하며, 성전을 통해 이익을 누리는 탐욕스러운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냐는 패역한 말을 한 그해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습니다.
▣ 7월 30일(주일) - 211일째날/ 렘29-31장/ 끌려간 남유다 백성에 대한 설득
☞ 예레미야는 포로 기간이 70년이며, 하나니의 큰 뜻이 있음을 바벨론으로 끌려간 백성에게 편지로 전합니다.
나라를 잃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은 좌절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왜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편지로 적어보냈습니다. 편지 내용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기간이 70년으로 결코 짧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집을 짓고 과일 나무를 심으며, 결혼하여 자손을 낳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성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마침내 70년의 기간이 차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던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당시의 상황만 보았을 때 예레미야의 노력은 크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이후에 보면 예레미야가 보낸 이 편지를 읽고 다니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긴 기간 동안 기도와 신앙으로 인내하며 훈련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이 다시 열조의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포하였지만 징계의 기간이 끝난 후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 또한 주십니다.
▣ 7월 31일(월) - 212일째날/ 렘32-33장/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
☞ 이스라엘이 비록 지금은 바벨론의 억압 아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세워진 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바벨론 제국에 저항하였고, 그 결과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위해 그곳을 둘러 싸고 진을 친 상황입니다. 이 무렵 예레미야는 남유다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예레미야가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레미야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끌로 예레미야를 찾아와 아나돗에 있는 밭을 팝니다. 예레미야는 은 17세겔을 달아 주고 그 땅에 대한 증서를 받습니다. 이는 비록 지금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지만, 계획된 훈련 기간이 끝나면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나타내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33장에서 예레미야는 다시 예루살렘의 회복을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징계와 함께 다가올 미래의 희망을 미리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은밀한 일"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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