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일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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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성경통독
운영자 2017-04-30 추천 0 댓글 0 조회 2829

5월 1일(월) - 121일째날/ 잠언21-24장/ 마음의 지혜

☞ 악인의 형통에 대해 부러워하지 않고, 재물에 대한 헛된 탐심을 이기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마음의 중심을 채우는 자가 참 지혜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며 반드시 불의를 심판하십니다. 이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고 기억하는 사람은 당장에는 손해를 입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공의를 행할 것입니다. 거짓과 불의가 만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정의의 편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정의를 사모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약한 자를 탈취하지 않으며, 곤고한 자를 압제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약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은 더 깊은 하나님의 지혜를 보상으로 받기에 충분합니다.

  계속해서 잠언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탐심을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탐심에서 벗어난 눈문이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모든 탐심을 이기며 마음을 지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또한 잠언은 악인의 형통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정직한 길에서 돌아서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받는 모습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에게는 악을 행하는 미련한 자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고귀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5월 2일(화) - 122일째날/ 잠언25-29장/ 악한 길을 피하라

☞ 잠언은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의 특징과 그들의 마지막에 대해 설명하며, 그러한 행동에서 돌이키고 경계할 것을 강조합니다.

잠언은 이어서 미련한 자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들의 마지막은 어떠한지, 미련한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마지막은 패망입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미련한 자의 행동에 요동하지 않고 그들의 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게속해서 잠언은 지혜로운 자의 물질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정정당당하게 쌓아가는 것은 물론, 자신의 소유물로 가난한 자의 형편을 살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은 그 마지막 부분에서 어리석은 교만을 경계하며 겸손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입의 말로 스스로를 낮추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 낮은 자와 함께하는 삶의 양식입니다. 특히 지도자의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고, 백성은 의로움으로 가난한 자를 돌아보며, 관원은 정직하고, 부모와 자신의 관계가 율법 아래ㅅ에서 바로 세워지는 모습이 지혜를 통해 그려지는 잠언의 풍경화입니다.

5월 3일(수) - 123일째날/ 잠언30-31장/ 아굴의 잠언과 르무엘 모친의 잠언

☞ 아굴은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말하며, 르무엘의 어머니는 왕의 도리를 교훈합니다.

잠언 30장을 쓴 야계의 아들 아굴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그는 자연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았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부족과 무지함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되는 아굴의 잠언은 특별히 인간사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섢하지 않은 일들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 31장의 말씀은 루무엘의 어머니가 한 나라의 왕인 자신의 아들에게 주는 교훈의 내용입니다. 르무엘의 어머니는 왕인 자신의 아들이 누리는 혜택과 아울러 왕의 도리와 책임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르무엘이 왕으로서 정치를 잘 펼 수 있도록 아내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언급합니다. 잠언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잠 31:10)라는 말로 현숙한 여인을 맞이하는 것은 진주보다 더 귀한 보물을 차지하는 것이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내의 조언이 남편의 길을 올곧게, 혹은 굽게도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남긴 조언이 매우 귀합니다.

5월 4일(목) - 124일째날/ 아가1-4장/ 사랑이란 무엇인가?

☞ 솔로몬의 아가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순결하고도 강렬한 사랑을 통해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아가는 '노래들 중의 노래' 또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의미합니다. 아가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에서 이루어진 순결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 노래를 통해 서로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아가가 말하는 사랑은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장벽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던 왕인 솔로몬과 향촌 처녀의 사랑은 참으로 진한 감동을 자아냅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에 대한 집중입니다. 서로에게 집중할 때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거나, 희미하게 보일 뿐입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은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를 최고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또한 사랑은 상대에 대한 세밀한 관심과 배려입니다. 솔로몬은 사랑하는 연인의 단잠을 깨우지 말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배려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자신의 기쁨입니다. 또한 사랑은 서로 동행하는 것입니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발걸음을 내딛는 데에 기쁨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가를 통해 우리는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5월 5일(금) - 125일째날/ 아가5-8장/ 진실한 사랑

☞ 꾸임없이 진실하며 사로를 하나되게 하는 참 사랑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으며, 죽음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의 허물을 덮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은 여인을 순전하고 어여쁘게, 그리고 흠이 없어 보이게 합니다. 사랑은 서로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집중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하고 마침내 서로를 서로에게 속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 이상 타인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할 수 있느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까지도 이기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결코 끊어질 수 없은 사랑에 도달합니다. 그 사랑에는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으며 서로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으며 죽음보다도 더 강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한 사랑은 세상의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가서에 흐르는 이 사랑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 특히 인생들을 향한 사랑과도 같습니다. 독생자를 보내시기까지 베푸신 사랑, 자신의 생명을 다 주시기까지 희생하신 큰 사랑, 누구도 끊을 수 없어서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그 사랑, 바로 우리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5월 6일(토) - 126일째날/ 왕상 11장/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

☞ 하나님을 떠나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솔로몬으로 인해 예루살렘엔 우상의 산들들이 세워지고 나라는 분단의 위기에 처합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40년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됩니다. 전기는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내각 정비(3년), 성전 건축(7년), 왕궁 건축(13년)을 마치기까지의 약 23년간입니다. 이 시기 솔로몬의 통치를 특징짓는 더 중요한 점은 바로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무렵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 열왕기서 부분과 아가, 잠언입니다. 그런데 통치 후기에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던'(왕상 3:3) 솔로몬의 마음이 분산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아버지 다윗의 길로 행하며 다른 신을 좇지 말라고 명하셨지만 그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고, 이제 솔로몬에게 있던 모든 것이 그를 떠납니다.

  솔로몬의 신앙은 퇴색되고 이로써 이스라엘의 분열을 야기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라를 남과 북으로 나누고, 다윗의 자손에게는 남유다를 맡기고,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에게 맡기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북쪽 열 지파를 맡기겠다는 계획을 전하십니다.

5월 7일(주일) - 127일째날/ 전도서1-3장/ 인생의 뒤안길에서의 고백

☞ 그 누구보다도 큰 지혜와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의 인생 말년,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고백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한 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어떤 왕보다도 큰 지혜와 부귀영화를 누렸던 그가 점차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의 말년은 그리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야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은 솔로몬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살 것을 가르치기 위해 전도서를 기록합니다.

  넘치는 당당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외쳤던 솔로몬의 목소리른 어느덧 힘없는 노인의 목소리로 바뀌었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게 '헛되다'는 고백을 반복합니다. 즐거움도 헛되고, 인간 지혜에는 한계가 있으며,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충고합니다. 솔로몬은 스스로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전 2:25)라고 말합니다. 왕궁에 살면서 인간들이 누리는 모든 즐거움의 끝을 보았지만 만족함을 주는 기쁨을 누렸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한 솔로몬은 이제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조언, 보석 중의 보석 같은 말을 남깁니다.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

5월 8일(월) - 128일째날/ 전도서 4-7장/ 유한인생 무한지혜

☞ 피조물들인 인생들의 삶이 유한함을 인정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절대적 주권을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역사를 통해 실패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인생들이 처음에는 재물과 부를 추구하는 물질주의의 길을 갑니다. 그러다가 그 물질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하면, 향락주의의 길로 들어서서 쾌락과 즐거움을 누리는 데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향락과 허망함을 안 후에는 결국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맙니다. 솔로몬은 인류 역사의 그 누구보다도 많은 물질을 가져보았고, 온갖 쾌락과 향락도 부족함 없이 누려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떠난 그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까지 경험했습니다. 그런 쓰디슨 깨달음을 얻은 그가 자신이 얻은 교훈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전도서를 쓴 것입니다.

  인생에서 최대의 비용을 지출하고 난 후 인생이 무엇인지를 써놓은 책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전도자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첫째, 선을 행하는 삶을 살며 둘째, 서로 도우며 사는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셋째, 입술을 지키는 사람이 행복하며 넷째,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끝으로 어느 한 쪽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권면합니다.

5월 9일(화) - 129일째날/ 전도서 8-12장/ 사람의 본문을 기억하라

☞ 전도자 솔로몬은 이 땅의 모든 것이 헛됨을 기억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임을 강조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9전 1:2) 말씀으로 그의 가르침을 시작했던 전도자가 그의 마지막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태어나서 자라고 나이가 듭니다. 노인이 되면, 춥지 않아도 몸이 떨리고, 허리가 구부러집니다. 이가 빠져 딱딱한 음식을 씹기 어려우며, 눈도 침침해집니다.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고, 머리에도 흰머리가 늘어나며, 무거운 짐을 지기 어려워집니다. 곧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전 12:5) 될 것입니다. 일찍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시 90:10)이라 고 고백했던 모세의 말처럼, 육체는 흙으로,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모든 인생의 마지막입니다.

  전도자 솔로몬은 바로 이러한 때가 이르기 전, 즉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당부합니다.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 피조물인 사람의 본분입니다. 사람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후에 인생들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이 깊은 깨달음 위에 비로소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5월 10일(수) - 130일째날/ 욥기 1-3장/ 욥의 고난과 탄식

☞ 의인 욥을 향한 사탄의 시험이 시작된 가운데,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도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욥기의 배경은 족장 시대로, 창세기와 그 시대적 배경이 같으나, 성경 전체의 흐름상 다른 시가서들과 함께 읽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성경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주제인 의인의 고난이 이제 욥의 경우를 통해 눈앞의 문제로 대두됩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1)라는 평가를 받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난데없이 큰 슬픔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모든 재산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그의 자식들마저 한날한시에 모두 죽고 맙니다. 또한 사탄은 욥의 정수리에서 발바닥까지 악성 종기가 나게 합니다. 이미 인애의 한계를 드러낸 욥의 아내는 욥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겠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 재앙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 2:10)라고 기록합니다.

  진주조개가 모래알 하나를 감싸고 아픔을 참아내면, 시간이 지난 후 결국 놀랍도록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게 됩니다. 결국 욥은 논리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실존적 고난과 영원한 지혜에 관하여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5월 11일(목) - 131일째날/ 욥기 4-7장/ 욥과 엘리바스의 첫 번째 논쟁

☞ 욥의 친구들은 큰 환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욥을 찾아왔으나, 엘리바스는 욥을 위로하기보다는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욥이 당한 환난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세 명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욥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슬퍼합니다. 그들은 욥의 곤고함이 너무나 극심한 것을 보고 차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일주일의 시간을 보냅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엘리바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대화는 욥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뜻하지 않은 환난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욥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욥은 친구들에게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심히 곤고한 상황에 처한 욥을 감싸주기보다는 아픈 말로 욥의 고난을 가중시켰습니다.

  죄인은 분명 망하는 법이며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게 된다는 지극히 흑백논리적 사고에서 비롯된 엘이바스의 발언은 재 가운데서 홀로 절규하는 욥에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고통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욥은 친구들을 향해 자신을 방어합니다.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 반박을 하면서 욥의 가슴은 더욱 답답했을 것입니다. 결국 욥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비통함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고난 속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5월 12일(금) - 132일째날/ 욥기 8-10장/ 욥과 빌닷의 첫 번째 논쟁

☞ 욥의 또 다른 친구 빌닷도 흑백논리로 욥을 판단하여 정죄하기 시작하고, 욥은 자신의 결백을 하나님 앞에 토로합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 이어 또 다른 친구가 등장합니다. 엘리바스의 발언에 대한 욥의 반박과 호소를 가만히 듣고 있던 수아 사람 빌닷이 입을 연 것입니다. 빌닷은 지금이라도 욥이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용서해주시고 복을 주신다며, 욥에게 죄의 자백을 촉구합니다. 이러한 빌닷의 말은 이미 큰 고통과 깊은 좌절 속에 빠진 욥을 더욱 힘들게 한느 말에 불과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영문을 모른 채, 이 문제를 어떻게 하소연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한 친구들은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고 책망하듯 말합니다. 이에 욥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라고 외칩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욥 10:7)라고 말입니다. 욥을 이런 고통이 어디서 연유하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인생의 모든 것을 조성하신 하나님께 자신에게 주신 고통을 그만 거두사기를 호소하며 자신의 악하지 않음을 기억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5월 13일(토) - 133일째날/ 욥기 11-14장/ 욥과 소발의 첫 번째 논쟁

☞ 욥의 탄식까지도 불의하다고 정죄하는 소발의 말에 욥은 친구들의 교만을 비판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욥의 탄식은 소발의 감정을 자극하였고, 소발은 그가 확신하는 종교적 교리를 욥에게 강조합니다. 소발은 욥의 탄식까지도 불의하다고 냉정하게 정죄하며, 욥이 당하는 고통은 욥이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죄악 때문에 겪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말은 욥을 죄인의 자리로 몰아넣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질책에 가까운 친구들의 말을 들은 욥은 오히려 인생들의 헛된 지혜를 침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몸부림 속에서도 욥이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침묵하십니다. 욥이 당하는 육체적인 고통이나 친구들의 비방은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하여 더 괴롭고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욥 13:22)라는 욥의 간절한 부르집음과 외침은 그의 답답한 심정을 그대로 표현합니다. 욥은 예고 없이 닥친 고난 앞에서 무력하게 넘어지는 자신을 보며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고 한계가 많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 고통의 시간이 언제 끝날찌 알 수 없는 욥은 이 시기가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5월 14일(주일) - 134일째날/ 욥기 15-17장/ 욥과 엘리바스의 두 번째 논쟁

☞ 인과응보를 주장하는 친구들과 욥의 변론은 평행선을 달리고, 욥은 또 다시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이제 욥과 세 친구들 사이의 두 번째 논쟁이 욥기 15-21장으로 이어집니다. 세 친구들은 각자의 논리로 욥의 불의를 밝히려 했고, 욥은 그때마다 반론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 논쟁을 시작한 엘리바스는 욥을 다그치며 회개를 종용합니다. 그의 주장은 전통적인 이분법적 논리로,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구원하시고 악인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엘리바스의 주장이 일반적으로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욥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 특히 의인에게 고통을 안겨주실 때는 꼭 그들의 죄악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하셨던 분입니다.(창 22장). 욥은 엘리바스의 말에 대답하며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지금 욥이 감당해야 하는 아픔은 욥이 당하는 현실적인 고난 문제와 더불어 욥을 정죄하는 그의 친구들, 그리고 여전히 침묵하고 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더욱 무겁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살아있으나 삶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는 데까지 이른 욥의 절망을 보면서, 욥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해보게 됩니다.

5월 15일(월) - 135일째날/ 욥기 18-19장/ 욥과 빌닷의 두 번째 논쟁

☞ 욥은 그의 고난을 의인의 고난으로 인정하지 않는 친구들의 악한 말을 들으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합니다.

답답한 욥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시간이 갈수록 욥을 향한 친구들의 말은 더 거칠어져 갑니다. 빌닷의 발언에는 욥에 대한 어떠한 동정도 없이 선악에 따른 상벌이라는 대립구도에 따라 욥을 향한 정외함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친구들 앞에서 욥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합니다.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욥 19:21).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욥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함께 아파해주지 못합니다. 욥은 홀로 고통 가운데 놓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늘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 신실한 믿음입니다. 아무도 바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욥은 더욱 하나님 뵈올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으로 인해 형제들과 주위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서 떠났음을 말합니다. 육체의 고통과 자신이 겪는 고난보다 더 큰 고통은 다름 아닌 욥의 주변 사람들이 욥에게 주는 상처들이었던 것입니다. 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만이 자신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5월 16일(화) - 136일째날/ 욥기 20-21장/ 욥과 소발의 두 번째 논쟁

☞ 욥의 형편을 진지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는 친구들, 그들의 마음에는 가장 중요한 욥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없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심한 고난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욥에 대한 위로보다는 정죄와 자기 논리의 관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소발의 두 번째 발언에 대해 욥은 눈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합니다. 욥에 세상에 가득한 모순을 열거하며, 의인은 번성하고 악인은 쇠하게 되는 것이 진리이기는 하나, 현실에는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친구들의 변론이 전혀 근거 없거나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그들이 한 만들이 귀한 진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난과 죄의 문제는 인간들이 논쟁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를 구원하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지만 하나님은 인생들의 논리로 다 설명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비록 이 세상에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득세하는 부조리가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에 흠이 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정한 때가 있으신 분이며 하나님의 때에 모든 선과 악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5월 17일(수) - 137일째날/ 욥기 22-24장/ 욥과 엘리바스의 세 번째 논쟁

☞ 욥을 온갖 악행을 일삼는 자로 호도하는 엘리바스의 말에 욥은 이제 하나님과의 대면만을 갈망하며 간구합니다. 

욥기 22-31장까지 욥에 대한 친구들으 마지막 변론이 시작됩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온갖 악행을 일삼는 자로 호도합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회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1)라는 것이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였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기 위해 욥이 실제 범하지도 않은 죄악들을 추측하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엘리바스의 변론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습니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욥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라며 하나님과 대면하기를 갈망합니다. 욥은 그가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 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고난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자신을 단련하시고 순수한 정금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분명한 목적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의인들이 때로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다만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분명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5월 18일(목) - 138일째날/ 욥기 25-31장/ 욥과 빌닷의 세 번째 논쟁

☞ 욥의 고난을 계속 죄악의 문제로 해석하는 친구들의 비난 앞에서 욥은 하나님의 판결을 듣기를 소망합니다.

빌닷의 세 번째 말을 끝으로 욥을 향한 세 친구들의 논쟁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엄위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들은 벌레나 다름없다"는 빌닷의 세 번째 발언은 이전까지의 주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욥은 빌닷의 단편적인 지식을 조롱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빌닷을 공격합니다. 고난당한 욥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그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고, 욥을 정죄하기에만 급급했던 친구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을 주셨지만 숨이 붙어 있는 한 불의를 말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순전함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해 끝까지 자신의 정결함을 주장합니다. 세 친구들과의 대화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시점에서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며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존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욥의 말은 앞으로 있게 될 하나님의 질문에 욥이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5월 19일(금) - 139일째날/ 욥기 32-37장/ 엘리후의 발언

☞ 평행선을 긋고 있던 욥과 친구들의 대화는 엘리후의 발언을 계기로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과 욥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욥과 세 친구 사이에 진행되던 논쟁에 큰 전환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의 논쟁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엘리후가 더 이상 문제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자 이 논쟁에 뛰어든 것입니다. 엘리후는 이전의 세 친구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들처럼 욥을 정죄하거나 그가 당하는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논리로 말하지 않습니다. 엘리후는 고난을 하나님의 교육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욥의 가장 큰 잘못으로 자신이 참으로 의로우며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교만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 앞에서 욥이 의로우냐, 그렇지 못하느냐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욥이 어떠한 자세를 취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그가 일장 연설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이 모든 자연 현상을 다 이해할 수 없듯이,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후는 고통 가운데 있는 인생들의 처절한 부르짖음이 헛되다고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에 관심이 없으시며 영향도 받지 않으실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5월 20일(토) - 140일째날/ 욥기 38-42장/ 하나님의 대답

☞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던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경영하시는 자연의 섭리를 말씀하시며, 그분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십니다.

자신들의 주장만을 고집해오던 욥의 친구들과 자신을 변호하던 욥과의 끝날 줄 모르는 논쟁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이로써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모든 논쟁은 명쾌하게 끝이 납니다. 세상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선언과 더불어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임의대로 판단하고 말했던 욥과 그의 친구들은 위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들의 입을 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통의 원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운행되는 자연의 섭리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제한적이며 편협한가를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 도저히 인간의 지혜로 설명해낼 수 없는 부분들을 언급하십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들이 많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과 회복도 모두 하나님의 입김 아래 있습니다. 욥은 고백합니다."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한 것입니다. 이렇게 욥과 하나님의 깊은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욥기는 막을 내립니다.

5월 21일(주일) - 141일째날/ 시편1-2,4-9편/ 시와 찬미

☞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 여호와의 율법을 강조하고 있는 시편 1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표현하고 있ㅅ브니다. 인생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시 1:6),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일을 오늘의 즐거움으로 삼는 것은 가장 탁월하며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시편 2편) 이 시편은 소위 제왕시라고 불리는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주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시편들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비웃음의 대상이 된 무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자유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밝히고 있습니다.(시편 4편)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는 자들을 책망합니다. 다윗은 경건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하고 확고한 신뢰를 고백합니다. 그는 인생들이 하나님의 때와 일하시는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한 것입니다.

(시편 5편)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며, 하나님께 자신이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그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도 다윗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편 6편) 이 시편에서 다윗은 뼈가 떨리고 심지어 영혼까지 떨리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밤마다 탄식하며 눈물로 요를 적시고 있다고 호소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건져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이처럼 다윗은 '주의 사랑'을 의지하여 더욱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시편 7편) 다윗은 다른 방법을 동원하기 전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이 최종적인 것임을 받아들이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려는 다윗의 결심과 노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시편 8편)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손수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 큰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까? 다윗은 사람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신 하나님을 더욱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시편 9편)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에는 언제나 기쁨이 넘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고 주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다윗의 시편에 기쁨이 넘칩니다.

5월 22일(월) - 142 일째날/ 시편 10-18편/ 시와 찬미

☞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다윗은 매일의 순간순간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도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시편 10편) 의인들을 핍박하는 악인들의 득세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보다도 다윗의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했던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그러나 깊은 절망의 상황 속에서 다윗은 역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시편 11편) 하나님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사람들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인'은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시편 12편)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입술의 말입니다. 다윗은 악인의 말을 하나님께서 끊으실 것이라고 찬양하며, 자기 입술의 말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나가고자 합니다.

(시편 13편) 다윗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 다니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다윗의 마음은 갈수록 간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어느 때까지니이까?"(시 13:1)라고 묻고 있습니다. 다윗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붙들고 있습니다.

(시편 14편) 시대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믿었던 사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나님을 찾았던 사람,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에게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있는 가'였습니다.

(시편 15편) 다윗은 이 시편의 첫머리에서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그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다윗의 다짐과도 같습니다.

(시편 16편) 오랫동안 도망자 신세였던 다윗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 유일한 믿음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자신에게 복이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17편) 다윗은 자신이 곤고함에 처해 있을 때마다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며 곤고함에서 구해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어려운 중에도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끝내 신뢰하는 다윗의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을 것입니다.

(시편 18편) 이 시편은 다윗이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냄을 받은 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로 사무엘하 22장과 대동소이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견뎌온 역경의 시절을 아름다운 신앙 고백으로 바꿉니다. 힘든 역경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지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월 23일(화) - 143일째날/ 시편 19-27편/ 시와 찬미

☞ 깊은 탄식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입술의 말과 생각과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합니다.

(시편 19편) 다윗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의 완전하심을 찬양하며, 여호와의 법도가 자신의 삶을 다스린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20편) 다윗은 기나긴 고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역경의 시간은 길고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칼끝이 자신을 향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신을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편 21편)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 주시는 참된 기쁨이 다윗에게 넘칩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참된 왕이신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한다고 고백합니다.(시편 22편) 다윗은 그의 부르짖음에도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깊이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 탄식이 원망과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고 다윗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인생 속에서 수차례 반복된 체험이었습니다.

(시편 23편) 다윗은 목자로서 양을 돌보면서,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온몸으로 깨달은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런 감사와 행복의 마음을 담아 이 시편을 읊고 또 읊으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편 24편)'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 즉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자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시편 25편) 다윗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시와 노래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에 대해 하나님께 신원하며 의뢰합니다.  이는 환난 날에 건지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신뢰하는 마음이 다윗에게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시편 26편)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살피고 시험해달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이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험을 주시되 곧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27편)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들, 대적들, 원수들이 자신에게 달려들거나 군대가 대적하여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언제나 조급해하지 않았고, 때문에 헤브론에서 왕이 된 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7년 6개월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5월 24일(수) - 144일째날/ 시편 28-33편/ 시와 찬미

☞ 참된 보호자요,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그의 인생 속에서 늘 경험하였던 다윗은 그의 노래들 속에 이 확신과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시편 28편) 하나님의 대한 다윗의 표현들을 살펴보면,'나의 반석''나의 힘''나의 방패'입니다. 다윗의 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반석과 힘과 요새가 되어주시고 싶게 하는 진정한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편 29편) 다윗은 하나님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며, 화염을 가르고, 광야을 진동시킨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처럼 힘 있고 능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실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 30편) 다윗은 형통할 때에나 그렇지 않을 때에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슬픔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우셨다고 고백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된 기쁨을 누리렸던 다윗은 참으로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시편 31편)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크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악인의 손에서 의인을 건지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시편 32편) 다윗은 허물과 죄에 댛서 입을 열지 않았을 때에는 뼈가 쇠할 정도로 종일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영과 육이 모두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허물들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고 나니 곧 사함을 받습니다. 용서의 은혜뿐 아니라 놀라운 사귐의 은혜를 힘입게 됩니다.

(시편 33편) 다윗은 지나온 자신의 생애 가운데 친히 개입하셔서 돌보아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찬양하고, 현재 자신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며 자신과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은 모든 만물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5월 25일(목) - 145일째날/ 시편 35-41편/ 시와 찬미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신뢰하고 있기에, 악인들의 괴롭힘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붙들고 다윗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시편 35편) 다윗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당한다고 해도 사람에게 복수를 하거나 공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인생을 재판하시는 분이라는 깊은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36편) 다윗은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이처럼 확고한 신뢰를 보내는 다윗은 결국 아름다운 삶의 자취를 남깁니다.

(시편 37편) 다윗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불구하고 행악자로 인하여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공정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이 똑같은 행악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믿고 따르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시편 38편)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해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며 징계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다시금 희망을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39편) 다윗은 악인 앞에서 자신의 입에 제갈을 먹이겠다고 결심하고, 나아가 하나님께만 자신의 소망을 두겠노라고 노래합니다. 오직 심판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말과 행위를 지키는 다윗의 모습은 그의 굳건한 믿음을 보여줍니다.(시편 40편) 다윗은 고난 가운데에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결국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깊은 웅덩이와 수렁으로부터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시편 41편) 다윗은 힘이 없었을 때에 행악자로 인해 불평하지 않고, 막강한 힘이 주어졌을 때에도 그 힘을 복수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 그의 말과 행동이 되었습니다.

5월 26일(금) - 146일째날/ 시편 42-50,53편/ 시와 찬미

☞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 되시고 힘과 도움이시기에 그분의 자녀들은 모든 것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으며 평안을 누립니다.

(시편 42편)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낙심이 되므로 오히려 하나님을 기억한다고 고백합니다. 끝까지 불안해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그분의 도우심을 얻을 것입니다.

(시편 43편) 시인은 하나님께 불의한 자에게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간구하며, 자신의 영혼에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5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에게 결국 힘을 주십니다.

(시편 44편)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과의 기억을 더듬어 떠올리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이스라엘의 조상들로부터 시작하여 오랜 세월에 결쳐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힘든 현실 속에서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17절)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합니다.

(시편 45편) 이 시편에 등장하는 왕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만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시인은 왕을 통해서 하나님께 올려질 왕의 사랑과 충성을 기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46편) 이 시편 말씀은 마음속 깊이 불안해하며 절망하는 이들에게 큰 힘을 줍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힘'과 '도움'이 되심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시편 47편)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단지 이스라엘만의 왕이 아니라 온 땅의 왕이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의 역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나라와 모든 인류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시편 48편) 시온 성은 다윗 이후로 정치와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가 된 곳입니다. 또한 성전이 건축된 후에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성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되새겨 보았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49편) 시인은 모든 인생의 흐름을 세밀하게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의 미래는 공허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희망의 원천히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이 시편의 지은이이며 성전 찬양대원인 아삽은 예배에 참석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22절)라고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삽은 이 시편에서 하나님께서 심판장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하신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오직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만이 영화로우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53편) 다윗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진정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5월 27일(토) - 147일째날/ 시편 55-56, 58, 60-66편/ 시와 찬미

☞ 하나님은 그분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의뢰하는 의인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허리 굽혀 응답하실 만큼 가까이 계신 분입니다.

(시편 55편) 시인은 원수와 악인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심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도의 힘을 깨달은 자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시편 56편) 다윗은 '종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는 신세였으나 생명을 잃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보는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 앞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을 지키는 다윗의 시를 통해 하나님과 인생 모두에게 큰 기쁨이 넘칩니다.

(시편 58편) 이 시편은 의인과 악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의인의 길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두 달래 길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의인의 길을 선택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시편 60편) 시인은 하나님께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5절)를 오른손으로 구원하여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주변 모든 나라에 미칩니다. 따라서 전쟁의 승리보다는 더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61편)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은 주의 장막과 주의 날개 아래에 거하게 됩니다.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서원을 들어주셨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고백하며 영원히 하나님 안에 거하며 보호받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62편) 믿음을 지키는 것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인은 권능과 인자가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알고 견고한 반석이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로를 고백합니다.

(시편 63편)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자신의 육체가 주를 앙모한다고 말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명을 향한 간절한 열망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편 64편) 다윗은 화살 같은 독설에도 주저앉지 않고, 더욱 강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뢰합니다. 행악하는 자의 독한 말에 그와 동일한 말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시편 65편)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알고, 그분이 자신의 버거운 죄 짐을 해결해주시는 분임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미등ㅁ으로 산과 바다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자는 그분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시편 66편)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외침으로 시작한 이 시편은 개인과 공동체적인 특별한 경험을 함께 노래하고 있습니다. 온 땅과 만민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드립니다.

5월 28일(주일) - 148일째날/ 시편 67-72편/ 시와 찬미

☞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때, 우리는 영원한 구원의 은혜와 하늘의 복을 이 땅에서부터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시편 67편) 시인은 구원의 은혜와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고 이를 노래합니다.

(시편 68편) 이스라엘 역사에서 만나는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원수들, 죄를 짓고 다니는 자들을 멸하는 분이시고, 고독한 자들과 갇힌 자들, 가난한 자들을 도우시고, 백성들 앞에 앞서 나가며 싸우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되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시편 69편) 자신의 무고함에도 불구하고 고난 가운데 처해진 시인이 깊은 탄식 가운데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하나님만이 자신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건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고난을 이길 힘과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70편) 다윗은 자신을 '주를 찾는 모든 자들' 속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 있는 경건한 자 곧 의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고백하며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합니다.

(시편 71편)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이 나이가 들고 늙어도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인간의 관심보다 하나님의 관심을 요청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시편 72편) 이 시편은 솔로몬의 찬양입니다. 솔로몬은 이 시편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솔로몬의 지혜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났습니다.

▣ 5월 29일(월) - 149일째날/ 시편 73-78편/ 시와 찬미

☞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줍니다.

(시편 73편)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 악인들의 종말이 어떠할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자기의 영원한 분깃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시편 74편) 시인 아삽은 하나님께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라고 간곡하게 부르집으며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스라엘의 내외적인 상황이 모두 처참한 형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아십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역사를 회고하면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시편 75편) 의인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호소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입니다. 반면 악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들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리겠지만, 악인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78편) 이 시편은 하나님의 성읍과 성소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온의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는 땅이 두려워 잠잠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세상 모든 민족과 왕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시편 77편) 아삽은 주의 크신 권능과 그 구원은 변함없으며, 그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불안해하는 것은 인생의 연약함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아삽은 거룩하고 크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는 고백을 드림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시편 78편) 시편 78편은 시편 105, 106, 136편과 함께 역사 시편입니다. 출애굽 사건과 광야 여정을 중심으로 한 역사와 거기서 얻은 교훈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조상들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유다와 시온 산과 다윗을 택하신 것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 5월 30일(화) - 150일째날/ 시편 79-85편/ 시와 찬미

☞ 시인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막에 함께 거하기를 갈망하며,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79편) 아삽은 하나님께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4절)라고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아삽은 이것이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항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삽은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이 자신들의 죄에 있음을 고백하고 공의의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시편 80편) 아삽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면서 세 가지 중요한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목자와 양''왕과 백성''농부와 포도나무'가 바로 그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러한 이미지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아주 잘 나타내줍니다.

(시편 81편) 시인은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6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시련의 노래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지 않아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건을 절기마다 기억하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을 다짐했습니다.

(시편 82편)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약한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진자들이 가난한 자와 고아, 과부, 억울한 자들의 현실을 보살피는 사회가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회입니다.

(시편 83편)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의 하나님도 되시며, 온 세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아삽은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만이 온 세계의 지존자가 되심을 알게 되길 기대한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84편) 이 시편의 시인은 주의 궁정을 갈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장막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노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편 85편) 시인은 하나님께 진노를 거두어달라고 간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셨던 은혜를 회상하며 다시 한 번 주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화평이 있을 것입니다.

▣ 5월 31일(수) - 151일째날/ 시편 86-89편/ 시와 찬미

☞ 하나님께서는 주의 길을 일심과 전심으로 따르는 자들과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자를 도우시며 위로하시고, 영원토록 함께해주십니다.

(시편 86편) 다윗은 가난과 궁핍, 적들의 위협 아래 놓여 있는 상황 속에서도 '주의 도'를 가르쳐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며, 마음을 다하여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겠다고 아룁니다.

(시편 87편) 시온 곧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읍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장소입니다. 시인이 시온 성을 노래하는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이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88편) 시인은 탄식에 탄식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건져내실 것이라고 믿으며, '주야로' '매일 두 손을 들고' '아침마다' 주님께 부르는 것입니다.

(시편 89편)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먼저 다가오셨고, 다윗을 '내 종'이라 부르셨습니다. 이 관계는 단순한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것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분의 인자와 성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관계가 깊어지는 길은 인생들이 하나님의 법과 규례를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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