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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대림절의 깊은 묵상
임현희 2020-11-28 추천 0 댓글 0 조회 1561

대림절이란? 대림절이란 성탄절을 맞이하기 전 4주를 의미합니다. 2020년 대림절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회복이라는 주제 아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과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완성해 가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기쁨의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1129(주일)시편 19:7-10회복의 기도1

  

한동안 힐링이라는 말이 전국민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일상에 힘든 일이 많았다는 증거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회복이라는 단어가 절실합니다. 시편 19편의 개역 성경은 회복소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원문을 직역하면 회복’(소성)돌아옴입니다. , 회복은 영혼, 생명, 생기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은 낙심, 우울의 수렁에 빠져 있을 때는 스스로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내 힘으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회복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돌아오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시편은 다른 무언가가가 나를 소성시킨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나의 영혼을, 나의 생기를 되돌아오게 만들까요? 바로 여호와의 율법입니다. 율법은 가르침이며 교훈입니다. , 여호와의 가르침, 하나님의 교훈이야말로 우리의 생기를 되돌아오게 만듭니다. 여기에 신비가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을 읽기 시작할 때 나의 영혼은 소성되기 시작하며, 생명의 기운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이 대림절 기간에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입에 둡니다. 말씀으로 저를 회복시켜 주소서

 

 

 

1130()8:3, 21:3시온에 돌아오리라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돌아오라”(1:4). BC 520년경 바사의 다리오 왕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개를 촉구한 스가랴 선지자는 이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8: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시온(예루살렘)을 떠나 절망과 고통 속에서 바벨론 포로가 되어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에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 될 것이고, 백성들은 장수하며, 거리에는 어린이들이 가득한 평화의 동네가 될 것이다.”라는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시간 속에도 스가랴의 예언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생명이 위협받는 고통으로부터, 관계의 깨어짐의 고통으로부터,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간절함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시온, 곧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사람입니다. 대림절은 성령의 전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심령 속에 다시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계절입니다. 지금 우리는 깨끗한 성령의 전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깨끗한 성령의 전을 준비하고, 시온으로 다시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시다.

 

기도/ 하나님, 내가 깨끗한 성령의 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맞이하게 하소서

 

 

 

121()시편 52:7-8노래할 이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남유다 백성들이 포로생활 중에 고통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이 통치하십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라고 외치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유다 백성들, 파수꾼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 곧 포로생활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백성들의 눈은 여호와 하나님을 마주보며 마음껏 노래하게 될 것이다.”라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담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700년 후,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성탄절에 만나는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는 이 복된 소식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노래하는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노래할 이유! 우리의 인생과 가정, 교회와 열방 가운데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마음껏 노래하는 대림절입니다. 우리의 심령은 마음껏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마음 다해 찬양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122()66:15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 백성을 안타까워하시며 종일 손을 펴고 돌아오라고 애태우며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끝내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닫은 백성들에게는 결국 징벌하시되, 예고 없이 하나님의 시간에 철저하고 정확하게 심판하신다는 무서운 메시지를 들려주십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15).

일차적으로 이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당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하나님의 길을 벗어난 자들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의 때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을 예언한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죄악 된 길로 행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손을 펴고 종일토록 그 길에서 돌이키도록 권면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대림절을 지나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길에 서 있습니까? 혹여 심판받을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점검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나의 삶 가운데 주의 길에서 벗어난 일들을 돌아보고 회개하게 하소서

 

 

 

123()2:16-22평화의 복음을 전하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신분이 바뀌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 앞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주의 성전이 되어 평화의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만나는 대림절입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언더우드, 아펜젤러, 토마스 등 선교사의 전도가 한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으로 인해 우리의 인생관이 바뀌어,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24에 보면 사도 바울의 귀중한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이 말씀처럼 복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은 우리 평생의 사명입니다. 대림절에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오늘을 살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기도/ 하나님, 부지런히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입술과 삶이 되게 하소서.

 

 

 

124()1:28-31오셔서 일으키소서

 

예수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지방에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의 교훈에 깜짝 놀랐는데, 무엇보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말씀으로 고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고,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이 아프게 된 이유를 물었고, 나을 수 있을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잠잠히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31).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여인은 바로 일어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음료와 음식을 대접했을 것입니다. 그날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손잡고 일으키시는 치유의 기적을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손잡아 일으키시는 치유의 기적입니다. 대림절에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삶에 예수님이 오셔서 손잡아 일으키실 치유의 기적은 무엇입니까? 놀라운 기적을 구하며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은 무엇입니까?

 

기도/ 하나님, 주께서 주신 치유의 기적을 우리 가정과 교회, 이 민족 위에 베풀어 주소서.

 

 

 

125()시사 40:9-11하나님이 오시면

 

이사야는 노예생활 속 유다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지금은 자유를 잃고 살고 있지만 메시야가 오시면 새로운 세상, 평화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합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실 메시야 왕국이 실현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700년 후 이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다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시므온은 의로운 사람, 경건한 사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 성령이 그 위에 계신 사람,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성전을 떠나지 않던 시므온은 성령님의 말씀대로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오랫동안 혼자되어 외로움 속에서 지냈지만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던 안나도 아기 예수를 만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린 사람들은 주님을 만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고통과 슬픔, 불의가 가득합니다. 주의 백성들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목자같이 강한 팔로 백성들을 안으시고 구하실 것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대림절 기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우리는 고백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기 원합니다.”

 

기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땅을 고치고 회복시켜 주소서. 강한 팔로 안아 주소서.

 

 

 

126(주일)시편 80:7회복의 기도2

 

7절은 하나님께 우리를회복하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3절은 우리를돌이켜달라고 요청합니다. 원문상으로는 같은 의미지만 한글은 달리 번역되었습니다. 한글 번역의 풍성함을 살린다면, 결국회복돌이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내 삶에 온전한회복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시인은 그돌아감조차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돌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스스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돌아가게해 주실 때에야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돌이키심은 우리의 구원과 같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다면, 하나님께 가고 싶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우리를 돌이켜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억눌려 있는 우리를돌이켜주시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억눌린 자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다시 되돌아오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돌이킴도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기도하십시오. 주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기를.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소서. 우리를 돌이키소서.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소서.

 

 

 

127()14:6가증한 것들로부터 돌아서라!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중 명령법을 사용하십니다. 문자적으로 방향을 돌이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슈브가 능동 명령형과 사역 명령형으로 나란히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마음에 섬기고 있는 우상들을 버리되, 물리적 측면에서 버릴 뿐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육체와 마음이 모두 우상으로부터 멀어져야만 진정 우상을 버렸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로 돌아오기 위해 거쳐야 할 우선적 자세입니다.

 “양다리를 걸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세상과 하나님, 두 편에서 이익을 보려고 양다리를 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완전하게 걸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가증한 것들로부터 돌아서라!”나는 세상과 하나님께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하나님, 세상의 가증한 것들로부터 돌아서게 하소서.

 

 

 

128()18:30, 3:2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분이지만 그 심판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18:32). 예레미야 29:11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기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회개를 원하십니다. 죄를 멀리하려는 기본적인 자세는 내가 가져야 합니다.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려는 생각도 내가 취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로 회개의 기도를 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죄악의 걸림돌에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본문은돌이켜 회개하고라는 뜻의 히브리어슈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돌이키고 회개하라는 반복적인 호소에도 불구하고 매일 습관처럼 죄를 반복하여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습관을 끊고 죄를 미워하고 대적하면 모든 죄에서 떠날 수 있고 죄악의 걸림돌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나를 넘어뜨리려 하는 죄악의 걸림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대림절에 더 깊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앞으로 다가갑시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나를 넘어뜨리려 하는 죄악의 걸림돌에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

 

 

 

129()시편 119:58-60발걸음을 돌리다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게 됩니다. 사탄은 세상의 가치관이란 무기를 이용해서 믿는 자들을 힘들게 합니다. 사탄은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가라고 유혹합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죄악 속에 살아가기에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합리화시키려 합니다.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지 않으면 이런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발길을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자신의 행위를 돌아봤기 때문에 주께로 발걸음을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생각했기 때문에 멀어졌던 주님과의 관계를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신속하게 지체하지 않고 돌아서는 것입니다(60). 많은 경우, 내 행위가 잘못임을 알면서도 미련이 남아 그 잘못된 길에서 신속하게 돌아서지 못합니다. 머리로만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지체하지 말고 신속하게 죄의 길에서 돌아서서 주의 말씀으로 발길을 돌이켜야 합니다. 나는 여전히 세상에 미련이 남아 주께로 완전히 돌아서길 망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하나님, 세상 죄의 길에서 신속하고 완전하게 돌아서게 하소서.

 

 

 

1210()1:3나에게 돌아오라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왜 탕자가 되었을까요?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쾌락)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돈을 갖고 있었을 때는 아버지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돈이 다 떨어지고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자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이후 매일같이 그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돌아오자 그에게로 달려갑니다. 탕자였지만 아버지께 돌아오자마자 아들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탕자처럼 방황하던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용기를 내어 작정하고 결심하는 것은 내가 선택하고 취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나는 세상 쾌락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서있습니까? 신앙생활의 여정은 진리에서 넘어지고 되돌아오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복을 받고, 사랑을 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기도/ 하나님, 세상 쾌락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 품에 거하게 하소서.

 

 

 

1211()30:2-4마음을 돌이키라

 

회개한 이후의 삶이 중요합니다. 회개는 회개한 이후 다시 그 죄악을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 돌아온 이후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진노하려 하시다가고, 심판하려 하시다가도 마음을 돌이키시어 긍휼히 여기십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긴 했는데 말씀을 청종하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후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뿔뿔이 흩어질지라도 끝내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긍휼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죄를 깨닫고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을 누리며 다시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께 돌아온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1212()3:18-21돌아서면 새롭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회개는 지난날을 돌아보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잘못된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회개는 이웃이 당하는 불행을 위로해 주고 함께 아파해 줄 뿐만 아니라, 이웃을 정죄하는 신앙의 태도를 버리고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의 영은 정결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시고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회개하면 죄 없다 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회개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고 그로 인해 새것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고후 5:17). 비로소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당신의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성령의 사람으로 새롭게 되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당신은 죄에서 돌아서서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어 복음의 전달자로 쓰임받기 원하십니까?

 

기도/ 하나님, 죄에서 돌아서서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복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1213(주일)시편 51:10-12회복의 기도3

 

시편 51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회복을 요청하는 기도인 동시에 참회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한 뒤, 회복을 요청합니다. 시인이 요구하는 회복은 구체적으로 구원의 즐거움을 가리킵니다. ‘구원이라는 용어는 성경 전체에서 넓은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은 내세적으로 천국이라는 영적인 의미를 넘어 육신과 현실의 세계까지 아우릅니다. 예수님은 혈루증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5:34). 혈루증 여인에게 구원은 영적인 의미를 넘어 현실에서 질병으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혈루증 여인은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의 즐거움, 구원의 기쁨을 진정으로 맛본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편의 다윗도 구원의 즐거움,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이를 위해 다윗이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10-12절에는 ’(루아흐)이라는 말이 3번 반복되는데, 11절에서는 주의 성령을 간구했으며, 성령은 우리에게 정직한 ’(10), 자원하는 ’(12)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결국 회복은 성령충만이 관건입니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온 세계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도록 기도합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소서.

 

 

 

 

1214()28:13-17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집을 떠나 수천 리의 길을 걷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밧단아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 날을 들판에서 자야만 했습니다. 외롭고 두려운 가운데 어두운 밤을 지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놀라 잠에서 깨어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 이와 같은 야곱의 경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죄의식 가운데 살 때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과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죄인을 영원히 버리신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인을 영원히 돌아보지 않으신다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그럼에도 돌이키기를 원하시며 죄를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기도/ 하나님, 야곱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믿게 하소서.

 

 

 

1215()49:5-7여호와의 종을 통해 돌아올 것이다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운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종으로 부름받은 존재였지만, 본래 목적의 시역은 실패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종을 버리지 않고 다시금 회복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비록 여호와의 종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었어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방의 빛이 되게 하셔서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경배를 받게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종은 구속 역사를 통틀어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종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려고 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의 복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역시 여호와의 종의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역하여도 여전히 삶에는 고난이 찾아오고, 때로 그 고난이 우리를 절망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의지하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1216()39:25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특수한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이웃나라를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결국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 가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징계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이 무능하다고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모든 오해를 불식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에서 시작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1217()10:6-7긍휼의 사랑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요셉(북 이스라엘) 족속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되돌아오게하실 것입니다. 즉 회복시켜 주실 것인데, 회복에 대한 근거는 긍휼히 여김입니다. 어제는 하나님의 이름이 회복된 근거였다면, 오늘은 하나님의 긍휼이 근거입니다. 여기에서 쓰인 긍휼히 여기다라는 동사는 여성의 자궁을 의미하는 단어로 파생되었습니다. 즉 이 단어는 모성애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49:15에서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우리를 돌아오게 하시고 우리는 버림받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간구하는 소리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1218()126:1-3꿈꾸는 그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랫동안 이방의 포로생활에서 시달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대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쁨과 감격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벅찼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마치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 무조건 기뻐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미 폐허가 되었고, 재건을 위한 엄청난 고생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세력들이 방해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그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바라보며 기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할 때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포로에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어떤 외적인 고격을 받아도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대림절의 소망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꿈꾸는 것만 같았던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나님, 날마다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1219()26:15-18어둠으로부터 돌이키시는 하나님

 

사울은 회심하기 전에는 스스로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았습니다. 살기가 등등해서 예수님 믿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향한 사울의 핍박이 자신을 핍박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내 스스로 잘한다고 하는 일이 오히려 하나님과 교회를 대항할 수 있음을 알려 줍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대적하여 영원히 멸망할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둠속에 있던 사울을 택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삼아 주셨습니다. 어둠 속에 있던 사울은 예수께로 완전히 돌아서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구원한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평생 순교할 때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여기서 교훈을 얻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은 예수님을 위한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위한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섬기는 직분과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온전한 섬김인지 주님 앞에 묻고 점검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삶이 아니라 영광이 되는 삶이 되게 하소서.

 

 

 

1220(주일)시편 60:1회복의 기도4

 

우리는 때로 인생을 살면서 겪는 극심한 고통,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정말 계신지 의심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의 시인은 극심한 고통과 패배의 고난을하나님의 유기즉 버리심으로 인식합니다. 고통이 하나님의 분노하심이나 징계가 아닌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완전히, 최종적으로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하나님의회복을 구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시인의 자기인식에서 시작됩니다. 시인은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의 자녀)으로 인식합니다. 시편 60편에서 시인은 자신과 그가 속한 공동체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주의 백성’(3),‘주를 경외하는 자’(4),‘주께서 사랑하시는 자’(5), 는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하나님의백성이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 당당히회복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됨이라는 지위는 그 자체로 엄청난 힘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 패배의 쓰라림을 겪고 있다면,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 하나님의 자녀 됨의 지위를 이용하여 당당히 회복을 구하십시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권세를 주셨으니”(1:12).

 

기도/ 하나님, 우리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

 

 

 

1221()23:5-6의로운 가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두 번째 침략 이후에 그의 조카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본명은맛다니야입니다. 경건한 왕이었던 그의 아버지 요시야는 셋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맛다니야,‘여호와의 선물이라고 지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이전의 악한 왕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기준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법을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시드기야는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백성들의 삶은 비참해졌습니다. 그때 예레미야가 본문의 예언을 말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왕들과는 다른 새로운 왕,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의로운 왕이 세상에 오신다는 예언입니다.‘의로운 왕의 날이 오면 모든 땅 위에 여호와의 공의로움이 선포됩니다.‘의로운 왕은 세상의 압제와 죄의 고통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메시야입니다.

   대림절 기간에 우리는 구세주로 오신의로운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에도 임하여 주시기를 소망 중에 기다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무능한 포로가 아니라의로운 왕과 함께 승리의 주인광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소망을 품고 주님을 기다리게 하소서.

 

 

 

1222()52:9-10노래할지어다!

 

바벨론에서의 오랜 포로생활에 지친 유다 민족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삶은 비극적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왜 사는지에 대한 존재의 이유, 곧 삶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뜻입니다. 삶의 의미가 사라지고 나면, 인생은 황무지로 변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면서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며, 하나님을 떠나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향하여 다시 기쁜 소리로 노래하라고 명하십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팔이 나타나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은 믿음의 확신과 소망을 새롭게 합니다. 믿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환난 중에도 기쁘게 찬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시며 약속을 이루어 가신다는 확신의 깨달음이 오면, 그렇게도 괴롭던 문제가 별 게 아님을 알게 됩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닐지라도 믿음의 확신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었던 절망의 허상들을 깨뜨립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소망으로 오셨습니다. 소망으로 오신 예수님은 절망과 어두움에 빠져 허덕이는 인생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고, 기쁨의 노래를 회복시키십니다.

 

기도/ 하나님, 기쁨과 소망의 노래를 회복하게 하소서.

 

 

 

1223()12:10-13손을 잡으세요

 

예수님은 한쪽 손이 으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어떻게 손을 앞으로 내밀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내밀자, 말라서 움직이지 않던 손이 힘을 얻어 회복되었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오늘 우리의 손도 말라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씀대로, 말씀으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손이 말라 버려서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미루면서 변명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저렇게 손이 마르게 되었는지 그 원인은 관계가 없습니다. 믿음이 적기 때문인지, 가정환경 때문인지, 용기가 없어서 주저하고 있었는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지금네 손을 내밀라. 너는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돌아서서 망설이고 변명을 늘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 더 이상 핑계하지 말고, 말라 있는 우리 믿음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은 우리에게 실천하여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의 계절에 말라 있던 영적인 손이 펴져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는 신앙인이 됩시다.

 

기도/ 하나님, 말라서 굳어 있는 믿음의 손을 회복시켜 주소서

 

 

 

1224()8:22-25회복의 날

 

벳세다 지방 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옵니다. 예수님 말씀 한마디로도 사람을 고칠 수 있으셨지만,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눈에 침을 뱉고 안수하시며 고쳐 주십니다. 즉 눈을 고치는 과정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제자들이 자세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 주실 때는 대부분 즉시로 나음을 받았지, 이와 같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그에게 두 번이나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내가 너희를 만져 주고, 거듭 기도해 주었으니 너희도 어서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 보도록 하여라.”

   이 가르침으로 인해 제자들은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 눈이 열리고 예수님에 대해 새롭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위대한 선생님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선지자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이전과는 다른 분명한 대답을 합니다(29).“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우리도 제자들처럼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기도/ 하나님, 내 눈을 열어 주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1225()1:21구원의 이름

 

어느 주일 예배 후 광고 시간, 한 선생님이 앞으로 나와서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예수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있나요?”교회에 오래 나온 학생들도, 교회학교 선생님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그 이름의 의미를 가슴속에 담고 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의여호수아에서 온 말이며, 여호수아의 뜻은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구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1세기에 무척 흔한 유대인의 이름이었습니다(3:29, 13:6, 4:11). 그러나 2세기 이후로 예수라는 이름은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름이 너무나 숭고하기에 의도적으로 그 이름 짓기를 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름이 곧사명이셨고, 그 이름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마태복음 1장이 보여 주는 예수님의 오심과 그분의 사명은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 날, 이 기쁨의 소식을 널리 전하고 알립시다.

 

기도/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 다시 오셔서 슬픔과 죽음과 죄로 고통 받는 자녀들을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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