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첫째 주❙12월 2일(주일)❙하나님 나라를 전하러 오신 주님을 기다리며
이웃 마을로 향하시는 주님의 등이 보입니다.
고통과 절망으로 탄식하는 이들을 위해서
주님은 손을 얹저 주셨지요.
고통 대신 삶의 환희를, 절망 대신 소망을 주신 손길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천국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인생을 잃은 이들이 너무 많기에
주님을 발길을 옮겨야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심어질 때까지
주님은 결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웃 마을로, 또 이웃 마을로,
그렇게 마침내 내게 찾아오신 주님,
이젠 내가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이웃 마을들로 가렵니다.
❦12월 3일(월)❙누가복음 11:14-20❙내 삶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
예수님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자, 귀신 들렸던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리들은 이 일에 놀랐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떠들었습니다.“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예수님은 만일 귀신의 왕의 도움으로 귀신을 내쫓았다면,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여 사탄의 나라를 허무는 일, 즉 모순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그들에게 반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으신 사건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했음을 알려 주는 분명한 징표입니다. 귀신을 내쫓는 일은 사탄의 나라를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귀신을 내쫓고, 억압과 고통을 주는 사탄의 나라를 파괴하며, 자유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여전히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 나라를 계속 이루어 가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는 하나님 나라가 정녕 내 삶에 임했나요?
☞기도/ 하나님,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삶에 임하였음을 매 순간 깨닫게 하소서.
❦12월 4일(화) ❙누가복음 13:23-30❙좁은 문으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은 바로 구원의 문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이 문을 주님이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문 밖에 선 자들이“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께서 길거리에서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모른다고 하십니까?”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드렸지만, 주님은“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악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라고 대답하실 뿐입니다. 주님을 알지만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주님은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마다하고,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영광의 길로 달려가는 넓은 문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오늘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그 길이 좁고 험난할지라도 순종하며 견딜 때,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구원의 영광에 참여할 그 잔치를 고대하며 오늘도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가시겠습니까?
☞기도/ 하나님,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12월 5일(수) ❙마태복음 5:1-12❙하나님 나라의 복
마태복음 5-7장을 산상보훈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것은 천국시민이 따라야 할 삶의 원칙을 담고 있어‘천국시민의 헌장’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산상보훈을 실천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기 원하십니다.‘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을 기대하는 사람으로 천국을 얻게 됩니다. 나의 죄와 타인의 죄에 대해‘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온유한 자’는 심령이 가난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땅을 얻게 됩니다.‘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자신의 무능과 죄성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구원의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긍휼히 여기는 자’는 단순한 연민의 정을 넘어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동일시하고 그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으로, 긍휼을 얻게 됩니다.‘마음이 청결한 자’는 동기가 순수하고 생각이 고결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으며, 위협과 여러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복을 기억하고 힘써 하나님 나라의 빛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영원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 주님을 위한 핍박을 달게 받게 하소서.
❦12월 6일(목) ❙마태복음 13:31-35❙하나님 나라의 비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작은 것의 대명사인‘겨자씨’와 같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가장 미미해서 무시되는 겨자씨가 땅에 심겨져 자랐더니 나무만큼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어 쉼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위치한 곳이라기보다는, 작은 꿈으로 시작하여 그 꿈이 성취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일이며 사건입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누룩은 발표작용을 통해서 밀가루를 부풀게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밀가루는 부드럽고 맛있는 빵으로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선한 변화를 만들어 가는 특징이 있음을 설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품고 성실하게 살아서 그 꿈을 이루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주게 된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낼 때, 하나님 나라는 더욱더 왕성히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고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일상의 삶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게 하소서.
❦12월 7일(금) ❙마태복음 16:21-28❙하나님 나라의 제자도
예수님이 자신이 수난 받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한자리씩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제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말리며 나섰고,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위와 출세만을 생각했던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질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을 것입니다.“인자가 아버지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부인하고, 무엇을 끝까지 붙잡으시겠습니까?
☞기도/ 하나님, 제 자신의 필요와 안위와 출세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헌신하게 하소서.
❦12월 8일(토) ❙마태복음 18:1-14❙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 누가 높은 자가 될 것인지 여쭙자,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전한 순종, 겸손, 배려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천국ㅇ서 높이 대접받을 자도 이와 같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말씀하시며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차별받는 자들을 귀히 여기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을 설명하시면서“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부터 하늘 아버지의 뜻을 구현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을 향한 따뜻한 위로의 말, 그 사람을 위한 기도, 그 사람을 위한 냉수 한 그릇이 세상을 구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주변에 소외당하는 이의 아픔을 보게 하시고, 그에게 위로를 건네게 하소서.
❁대림절 둘째 주❙12월 9일(주일)❙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을 기다리며
예수님이 세리도 제자로 삼으시자 바리새인들은 비방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은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 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를 찾듯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병은 약으로 치료하지만, 죄는 회개로 치료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온 세상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오늘도 누군가의 간절한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한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놀라울 만큼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
❦12월 10일(월) ❙출애굽기 34:1-9❙자비의 하나님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둔 한 소녀가 나폴레옹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제발 아버지를 용서해 주세요.”나폴레옹은 법을 어긴 사연을 듣고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고, 소녀는 눈물로 다시 청했습니다.“저는 법과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탄원하는 것입니다.”침묵을 지키던 나폴레옹은 말했습니다.“네 아버지를 용서하니 돌아가라.”
시내산에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 속에서 더 명확하고 놀랍게 나타납니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신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회개와 은혜를 경험합니다. 우상 앞에 절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간절히 탄원한 모세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대속제물로 작정하신 극진한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벌하시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는 모세를 다시 시내산으로 부르시고, 돌판을 준비케 하신 후 새겨 주신 것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 바로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 하나님, 주의 인자하심을 깨닫게 하소서.
❦12월 11일(화) ❙요나 4:1-11❙아끼시는 하나님
호주 시드니에 있는 인형병원은 1913년에 설립되어 3대째 이어져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아끼고 정이 들었던 인형을 그냥 버릴 수 없어 이곳을 찾기 때문입니다. 적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 요나는 니느웨 성읍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 초막을 짓고 며칠간 기다렸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하시길 기다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위해 박넝쿨을 준비하셨고, 이어 벌레를 예비하셔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신 후 말씀하셨습니다.“네가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 백성들을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구원은 특정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이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뛰어넘어 전해지길 원하십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 모든 아픔과 절망과 눈물을 다 씻어 주시고 온 세상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을 기대하며 그 사랑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회개하는 자들을 다 구원하소서.
❦12월 12일(수) ❙호세아 14:1-3❙낮게 하시고 싸매 주시는 하나님
존 듀이는 사람은 경험함으로써 배운다고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경험하지 않았을 때는 온전히 배울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탕자도 아버지 집을 떠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지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언약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향해 선지자 호세아는 여호와께 돌아가자고 호소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고난당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는 분이라고 선포하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아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지었을 때 매를 드시지만, 종국에는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마침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기도/ 하나님, 삶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하소서.
❦12월 13일(목) ❙에스겔 18:21-32❙죄에서 떠날지어다
이스라엘에는“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환경과 부모 탓으로 돌리는 행위에 대한 속담입니다. 책임 전가는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책임은 전가되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처사가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부인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하시며“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 것이니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라.”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약한 자라도 죄에서 돌이켜 떠나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살 수 있지만, 의인이라도 악의 길로 가면 그가 범한 허물과 지은 죄로 죽는다고 오늘 본문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행한 바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에서 자유로울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죄의 삯인 사망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죄에서 떠나게 하시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소서.
❦12월 14일(금) ❙마태복음 4:12-17❙회개하라
독일의 시인이요, 소설가였던 부세는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산 너머 저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아, 나 또한 남을 따라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지만.”
행복이 먼 곳에 있지 않듯, 천국 또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유하다고, 권세가 있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죄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였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죄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기 때문에 결국 천국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고, 그래서 천국이 가까이 있게 합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즉시 회개함으로 회개를 일상화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주 안에서 날마다 죽고 다시 살 때 확실한 천궁의 백성들로 다가가게 됩니다.
☞기도/ 하나님, 회개를 일상화하는 천국 시민이 되게 하소서.
❦12월 15일(토) ❙로마서 6:1-14❙회개의 열매
예수님을 믿고, 지은 죄를 회개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지배를 받던 우리의 옛 사람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며 예수님과 함께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세례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처럼 우리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죄와 세상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거듭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이 영원한 생명을 받은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회개는 쉽지 않습니다. 뉘우침과 더불어 변화된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도우십니다. 그 마지막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회개의 열매로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대림절 셋째 주❙12월 16일(주일)❙대속물로 오신 주님을 기다리며
섬김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얼마든지 섬김을 받을 수 있는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아시기에 낮아지고 낮아져서 섬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 주신 섬김의 삶은 그분을 따르는 우리가 배우고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섬김은 우리를 드리는 것이며, 우리를 드려 주님의 일을 이루어 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섬김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과 복이 흐르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참되게 서고, 하나님 나라는 넓어져 주님의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 대림절, 생명 다해 섬기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모습을 배우기 원합니다.
❦12월 17일(월) ❙레위기16:29-34❙속죄일의 규례
대속죄일은 자신을 대신해 광야로 쫓겨나고(아사셀) 죽어 가는 짐승을 보며, 지난날을 속죄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거룩함으로 서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대속죄일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말씀에 따라 종일 금식하며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성안에 머무는 모든 사람이 지켜야 했습니다. 이는 모든 이들이 다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은총임을 보여 줍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날 회복하고, 하나님을 떠났던 마음을 다시 주님께 매어 하나님의 정결한 백성으로 섭니다. 그렇기에 속죄일은 정죄의 날이 아닌, 주님의 자녀로 회복과 치유를 맛보는 날입니다.
대림절,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은 죄 많은 우리가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사랑의 길잡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기도/ 하나님, 주님 앞에 우리를 내어 드립니다. 주여, 이 모습 이대로 우리를 받아 주소서.
❦12월 18일(화) ❙누가복음 22:14-23❙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몸과 피
성찬을 집례할 때마다 우시는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늘 떨리는 손으로 떡 조각을 겨우 떼어냈고, 잔을 한참 바라보다가 어렵게 들어 올리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이 떡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분의 몸이고, 잔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흘리신 땀이요, 눈물이요, 피입니다. 소중히 받아 드시고 이제는 여러분 안에 그분이 계심을 믿는 마음으로 굳건하게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소원대로 서로 사랑하시고, 어렵고 힘들어도 주저앉지 마시고 힘을 내어 세상의 희망으로 살아가십시오.”
성찬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시는 거룩한 힘이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친밀한 교제입니다. 또한 우리를 다시 주님의 몸된 교회로 살리시는 사랑입니다.“나는 하늘에서 온 떡이라.”“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이라.”는 음성으로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계시는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대림절, 하늘이 땅이 되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심을 기억하며, 그분이 아끼시는 영혼과 이 땅의 생명들과 함께 그날을 기다립시다.
☞기도/ 하나님, 날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의 자녀로 살게 하소서.
❦12월 19일(수)❙히브리서 9:11-22❙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향해‘왕 같은 제사장’처럼 늠름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한 신학교에 재직하신 교수님은‘왕 같은’을 왕이 아니라‘왕에게 속한’또는‘왕실이 후원하는’으로 풀이하며, 왕 되신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의 후원을 받아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라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 설립에 힘을 다하는 이들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대제사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짐승을 잡아 인간의 죄를 고백했던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죄 사함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거룩한 자신의 몸을 온전히 드림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그분께 속한 제사장’으로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구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왕께 속한 자로서 굳센 믿음과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대제사장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삶 속에서 영적인 예민함으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12월 20일(목)❙로마서 5:6-11❙죄인을 위하여
쉘 실버스타인의‘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놀이터와 그늘이 되고, 열매를 나누고, 기대어 쉴 수 있는 의자도 되어 준 나무는 한 인간을 따뜻하게 보듬어 세상에서 힘차게 살아가도록 돕는 보금자리였습니다.
예수님도 그와 같은 분입니다. 위로와 격려, 믿음과 용기, 사랑과 자비, 구원의 은총, 그리고 살 길과 갈 길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주신 분입니다. 그분을 만남으로 좁은 길을 걷게 되는 것 같지만, 이를 통해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 보람된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잘 보여 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8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도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거친 십자가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내주신 사랑의 증표로 두 개의 겹쳐진 나무만 남았습니다. 그 나무에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를 위해 생명 다한 사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마음 늘 새기고 세상에서 사랑을 아는 자로 살게 하소서.
❦12월 21일(금)❙갈라디아서 3:13-14❙속량의 은혜
구약에서는 노예나 포로를 석방시키기 위해 그들의 몸값을 대신 지불할 때 속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구해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그 상징인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감사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더불어 그 값에 맞게 살지 못할 때마다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속량하시기 위해 대속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믿는 이를 통해 온 세상을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속량함을 받은 우리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주님 감사합니다. 주 안에서 자유를 얻은 주님의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을 전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대림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속량의 기쁨을 잃지 않게 하시고 진리로 얻은 자유를 누리며 살게하소서.
❦12월 22일(토)❙에베소서 2:11-22❙화목의 직분
본문 22절 중‘성령 안에서’,‘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그리스도 예수 안에서’,‘함께’라는 구절 4개는 우리 신앙인의 삶에 매우 중요한 자세와 모습을 보여 줍니다. 작은 건물들이 잘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가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믿은 이들은 다른 이들과 잘 연결되어 성령의 은총이 흐르게 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죽게 된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로 새롭게 살게 하셨고, 갈등과 대립과 차별의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여 새로운 세상에서 더불어 살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저녁,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시고 떡과 잔을 나누시며 섬김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대림절, 우리 가운데 평화로 오신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간절한 마지막 기도가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도록 평화의 한 걸음을 떼는 오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게 하소서.
❁대림절 넷째 주❙12월 23일(주일)❙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주님을 기다리며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옵니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완주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여전히 미완성입니다. 사랑하기를 원했지만, 주님의 마음에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나의 입술은 기도하지만, 나의 마음은 성숙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폐하지 않고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보잘것없는 모래성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거대한 파도로 한순간에 휩쓸어 버리신다면 주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반죽으로 향기로운 빵을 구워내는 엄마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수고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지금도 완성하여 가십니다.
❦12월 24일(월)❙누가복음 4:16-21❙예언과 성취
성경은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들로 가득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였습니다.‘은혜의 해’는 희년을 이야기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안식일이, 칠 년에 한 번씩 안식년이, 오십 년에 한 번씩 희년이 돌아옵니다. 희년에는 종으로 팔렸던 사람이 자유인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팔렸던 땅도 돌려받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선포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무리 안식일, 안식년을 맞이하고 희년이 찾아와도 더 이상 쉼과 회복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이루실 것을 예언합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선포하셨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며 예수님은“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소식, 억눌린 사람에게는 자유의 소식,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밝은 광명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더 이상 미래의 일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이미 성취된 말씀이요, 우리는 그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기도/ 하나님,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심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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