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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야 웃는 돼지
임현희 2026-01-31 추천 0 댓글 0 조회 67

아버지는 교직을 내려놓으신 후, 산자락 외딴 동네에 개척교회를 세우셨다. 규모는 작았으나 그곳에 흐르는 믿음의 깊이와 성령 충만함의 온도는 결코 작지 않았다.

 

어느 날 자정을 넘긴 시각, 어둠의 정적을 깨고 양철 대문을 부서질 듯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고, 온 가족은 무슨 난리라도 난 줄 알고 혼비백산하여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사연은 절박하면서도 순박했다. 한 권사님 댁 돼지가 산통을 시작했으니, 무사히 새끼를 낳도록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삶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는 보석 같은 순수함이었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결국 부모님은 꼭두새벽에 돼지 심방을 다녀오셨다. 동이 트자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졌다. “우리 집 돼지가 여섯 마리 정도 낳을 줄 알았는데, 목사님이 기도해 주셔서 아홉 마리나 낳았다는 권사님의 자랑 섞인 소문이었다. 그 소박한 간증은 동네를 훈훈하게 물들였고, 부모님은 그날 이후 사람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생계가 달린 가축들까지 기꺼이 품어 안는 진정한 목자의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셨다.

 

돼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떠오르는 따뜻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세월이 흘러 목회자가 된 필자가 설교할 때면, 아버지는 늘 맨 앞줄에 앉아 긴장한 기색으로 경청하셨다. 평소 말씀이 적으셨던 아버지는 설교에 대해 단 한 번도 직접적인 칭찬이나 훈수를 두지 않으셨다. 다만 어머니를 통해 간혹 격려의 말을 전해 주실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목양실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더니 말없이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네고 나가셨다. 쪽지에는 짧게 돼지(), 되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필자는 마가복음 5장에 등장하는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로 설교했다. 귀신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했다는 내용이었다. 돼지 떼에 관한 말씀을 전하며 나도 모르게 돼지를 자꾸만 되지로 잘못 발음했던 모양이다. 말씀의 강단에 선 아들의 열정이 사소한 발음 하나로 가려지지 않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그 짧은 쪽지는, 그 어떤 신학 강의보다 깊은 가르침으로 내 가슴에 새겨졌다. 그날 이후 나는 돼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마다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리며 발음을 정성껏 매무새질하곤 한다.

 

문득 생각해보니, 살아 있는 돼지는 웃지 않는다. 하지만 돼지 저금통이나 조각품은 대개 웃는 얼굴이고, 고사상에 오른 돼지머리는 하나같이 눈을 지긋이 감은 채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콧구멍과 입에 지폐가 물려 있어서일까, 아니면 난생처음 곱게 면도를 한 것이 상쾌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들이 제각기 복을 빌며 자기 앞에 넙죽넙죽 절을 해대니 교만한 마음에 흐뭇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죽은 돼지머리 앞에 복을 빌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죽어서야 비로소 인위적인 웃음을 갖게 된 존재에게 인생의 복을 맡기다니 말이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디모데전서 4:7]

 

우리의 인생은 죽은 돼지의 미소에 기대는 미신적인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의 교만과 자아를 죽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삶으로써, 모든 범사가 주 안에서 잘 되지(Becoming)’ 인생이 되어야 한다. 세상이 말하는 막연한 행운이 아니라, 창조주와의 바른 관계 안에서 빚어지는 존재의 변화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평안하게 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24]

 

죽어서야 겨우 웃는 돼지에게 인생을 맡기지 말자. 대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자.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실 것이다.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우리 삶의 모든 지경에서 터져 나올 그 환한 웃음이야말로 신앙인이 누릴 진짜 복이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시편 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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