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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록볼록 엠보싱(embossing)
임현희 2022-08-18 추천 15 댓글 0 조회 873

한국전쟁을 겪으신 세대들에게는 아직도 크나큰 상흔이 남아있어전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가 떨려오시겠지만, 전후 세대들은 그 아픔을 책장과 입가에서만 맴도는 흔적으로만 기억한다. 특별한 놀이의 소재가 없어서이기도 하였겠지만 어릴 적 사내들의 최고의 놀이 중의 하나는전쟁놀이였고 그 전쟁터는 비교적 숲이 우거지고 능선이 조화를 이룬 뒷동산이었다.

 

  계급은 응당, 모인 사내들의 나이순이었고 한바탕 격전을 치른 후 몇 날이 못 되어 우리 편 대장이었던 형의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못함이 꼬마 병정들에게 감지되었다. 전쟁을 치르면서 지휘관으로 용을 써서 그런지 갑작스럽게 큰 용변이 마려워 급하게 몸을 가릴 수 있는 숲속에서 볼 일을 다 봤다. 문제는밑씻개가 준비되어있지 않아 그저 손이 닿는 대로 나뭇잎을 뜯어 차곡차곡 포개어 대략 마무리를 했단다. 저녁때가 되니 그 부위가 근질근질해서 긁을 수도 없고 찬물로 불 끄듯이 하며 달래보았지만 가려움으로 인한 불편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대장의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는 한동안 흉내장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하필 그때 볼일을 본 후 뒤처리 도구가 옻나무잎이었던 까닭에 그런 사단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욥기 2:8]

 

  지금도 가정에서 화장실을 한동안 이용하게 될 때면 책이나 신문을 들고 입장을 하곤 하는데 그 옛날에도 신문을 들고 그곳에 갔다. 지금이야 신문을 들고 들어가는 이유가 뉴스를 접하며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함이 목적이지만 그 시절에는 가족의 위생을 고려하여 집터에서 가장 멀고 구석진 곳에 움막처럼 만들어진 어둡고 침침한측간에서 글자가 보일 리도 없고 그 목적은 용변 본 후 뒤처리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에서였다. 그런데 신문지나 책장이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된 역사는 수백 년 전에 언급된 한 기록에 의해 밝혀진다. 589년 중국의 문인이자 학자인 안지추(顏之推, 531591)나는 오경(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의 인용문이나 현자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화장실 용도로 쓰는 걸 경고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종이 한 장도 귀한 시절이라 신문지 전 장을 이용한다는 것은 큰 사치이며 낭비였다. 조각 김 몇 장 크기로 네모반듯하게 잘라 철사에 꿰미 해진 신문을 몇 장 뜯어 구멍이 나지 않도록 살살 비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어 고이고이 접어가며 물자 절약을 했던 곳이 바로뒷간이었다.

 

  우리나라 화장실은 크게퍼세식수세식으로 나눌 수가 있다. 양쪽의 판자 위에 10점 만점 착지로 균형을 잡고, 깊은 스쿼트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돌아다니는 쥐는 내쫓고, 종아리에 나는 쥐는 연신 코에 침을 발라가며 용쓰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적당히 모인 용변을 똥지게 꾼은 퍼서 동네 외딴곳에 모아놓기도 하고 채소의 거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변기는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남은 재를 헛간에 수북이 쌓아놓곤 했는데 그 언저리에서 용변을 보고는 삽으로 떠서 잿더미에 던지고 재로 곱게 포장을 했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똥과 재를 섞어서 만든 거름을똥재라고 하는데, 효과가 좋아서 사람들이 지게를 지고 와서 사고, 팔기도 했단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똥 보기를 황금같이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역대하 1:15]

 

  이쯤 되니 옛날 왕들은 민생을 살피러 궁궐을 나왔다가 갑작스레 소식이 오게 될 때면 어떻게 용변을 보았을까가 궁금해진다. 제아무리 왕이라도 용변의 내용물은 민초들과 별반 다를 리 없겠지만 임금이나 왕비가 외부 행차 시에 사용하는 휴대용 변기가 있었는데 그 이름도 예쁜매화틀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어의는 왕이 용변을 본 휴대용 변기를 고이고이 감싸 떡 보자기처럼 휴대했다고 한다. 입궐하여 대소변의 빛깔과 냄새로 왕의 건강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민생들에게도 휴대용 변기가 있었으니 임꺽정이 한 방에 깨트렸다는요강이다. 요강은 툇마루 구석진 곳에 놓아 야간작업에 매우 용이하게 사용되었다. 문제는 온 가족이 곤히 잠든 사이사이를 비집고 왕래하는 것과, 작업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소리다. 대부분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참고 참다가 폭발 일보 직전에 뛰쳐나온 터라 제어할 수 없는 순간 폭발음을 발생시키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수줍은 새색시가 탄 가마의 요강에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서 요강 안에 목화씨를 깔았다고 한다.

 

  그때는 다 그러려니 하며 큰 불편한 마음 없이 그때 나름의 화장실 문화에 젖어 괄약근 건강하게 지키며 살아왔다. 어렴풋이 떠올려 보면 용변 후 신문지를 활용했던 시절은 그나마 신문물의 혜택을 누린 시절이었다. 이전 세대들은 짚을 구깃구깃하여 돌돌 말아 사용하기도 했고, 변소에 새끼줄을 매달아 놓고 다리를 벌려서 시속 10Km로 쓰윽하고 지나가면서 뒤처리를 했다고도 한다.

 

  지금은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집 안, 그것도 안방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고, 밑씻개의 이름도화장지로 명명되어 사용한다. 화장지의 종류도 용도에 따라 다양한데 두루마리 화장지, 점보 롤, 각 티슈 등이 있으며 선택 기준도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고, 너무 얇으면 안 되고, 거칠어 아이들 피부에 자극을 주면 안 되고, 뜯을 때마다 먼지가 발생 되면 안 되고, 화학약품 냄새가 나면 안 된단다.

 

  독일에서는 두툼한 화장지를 선호하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청결과 위생을 연상시키는 흰색 화장지가 인기가 있고, 탐미주의자가 많이 사는 프랑스에서는 장밋빛을 좋아한다고 한다. 백의민족인 우리나라 국민들은 당연히 백색을 좋아하고, 더불어서 길이가 길면 더 좋아하고,‘원 플러스 원제품은 더더욱 좋아하는 것 같다.

 

  화장지와 관련하여 기발한 연구 결과가 있다. 치약을 사용할 때 끝을 눌러 짜내는 가족도 있고 중간을 콱 눌러 짜내는 가족도 있는 것처럼, 화장실 휴지 걸이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걸 때 화장지를 뜯는 부분이 앞으로 놓이는지 아니면 뒤로 놓이는지에 대해 심리학자 길다 칼(Gilda Carle) 박사는 2,000여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앙케트(a questionnaire; an opinionnaire)를 했고 걸어놓는 방향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두루마리 화장지의 뜯는 부분을 앞으로 거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어필하는 일종의 지배적인 성격을 소유하여 인간관계에 있어 주도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하며, 반대로 뒤로 거는 사람들은 비교적 순종형의 사람으로 느긋한 성격으로 인간관계를 중요시하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유형이라고 한다. 나는 앞으로 거는 것을 선호하는데 구조와 각도 상 뜯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사사기 7:5-6]

 

  화장지는 나무를 분쇄하고 목재 펄프로 가공한 뒤 격자무늬 금속 그리드에 넣으며, 불필요한 수분은 펠트 롤러로 짜낸다. 그리고 건조 드럼과 열풍을 이용하여 최종적으로 건조한다. 완성된 종이는 폭 6m, 직경 4m나 되는 거대한 롤에 감기게 되고, 이 거대한 롤을 특수 기계가 표준 크기로 다시 감으면서 천공과 엠보싱, 장식 등을 추가하여 제품으로 출시하게 된다.

 

  화장지의 한 칸의 길이는 대략 11cm이며 전체 길이는 30m쯤 된다고 한다. 화장지는 한 칸 한 칸 뜯겨나가며 화장실 이용자를 건강하고 쾌적하며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화장실 안방 지킴이이다. 화장지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엠보싱이라는 민누름 무늬가 올록볼록하게 아로새겨 있어서 깔끔한 뒤처리에 큰 보탬을 준다.

 

  우리에게는 찾아보면 꽤 많은 엠보싱이 있다. 표정, 내 뻗는 손과 거둬들이는 손, 호흡의 들숨과 날숨, 생각의 표출과 유입이라는 올록볼록 엠보싱을 사용할 때 부드러움으로 배려하고, 감싸줌으로 보듬어주어야 한다. 거기에 향긋함을 첨가시킨다면 집터의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했던 측간이 건물의 외곽에변소라는 이름으로 부속 건물이 되고, 이내 안방에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을 수용하고 포용하여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안주시킬 수 있지 않을까?

 

  조용히 화장실을 찾아 화장지의 뜯는 부분이 뒤로 놓이게 걸어놓으며 부드럽고 여백을 잘 메꾼 엠보싱과 부끄러운 스킨십을 해 본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로새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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