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일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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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성경통독
운영자 2017-11-30 추천 0 댓글 0 조회 2368

121() / 335일째날 / 20:1-6, 1-3 / 복음에 빚진 자

예수의 이름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물이라는 것을 확신한 바울은 자신이 그 귀한 복음에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고린도전후서를 썼던 에베소를 떠나서 마게도냐 지방을 다녀가며 제자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은 그 일을 마친 후 고린도에서 석 달 정도 머무릅니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작별하고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갈 계획을 세웁니다. ,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해 공식적인 선교보고를 마치고, 로마를 거쳐 서바나에 가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머물렀던 석 달 동안 중요한 일 하나를 하는데, 바로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아직 로마 교인들을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기에 더욱 정성을 들여 편지를 써내려갔을 것입니다. 또한 그 편지에는 로마에 가고 싶은 자신의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길입니다. 이 의란 하나님께서 화목제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를 의미합니다. 모든 인생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122() / 336일째날 / 4-7 / 은혜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생명, 그 구속의 은총은 모든 인생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율법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든 듣지 못한 사람이든,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온 죄는 인간 스스로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인간들과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멍에인 죄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 죄로부터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구원이 우리에게 이르렀습니다.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김을 받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바울은 이제 의롭게 된 자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하여 역설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때에 우리의 모든 죄악된 삶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실 때에 우리 역시 새로운 삶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123(주일) / 337일째날 / 8-11 /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세상의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으며,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죄로부터, 사망으로부터,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결코 끊어질 수 없음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이 확신을 가슴에 담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바울에게도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활동한 바울의 마음에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과 아울러 자기 민족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는 바울의 고백에서 그가 얼마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해 뜨거운 구원 열정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124() / 338일째날 / 12-14 /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빛 가운데 거하며,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은 그들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된 이들이 각각의 다양한 은사대로 섬기고 봉사하기를 권면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가 사랑을 실천하며 선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부지런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되, 그 사랑과 섬김이 진실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바울은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라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는 바울은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지지 말라라고 권면하며, 더 나아가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로마 교회에 권하는 핵심은사랑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로마 교회에 전하는 율법에 대한 교훈은사랑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125() / 339일째날 / 15-16 / 땅 끝 비젼과 받음직한 섬김

바울은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픈 비전의 사람이며, 성도 섬기는 일을 위한 깊은 배려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자기를 소개하고 그들의 후원을 받아 서바나에 가고자 했습니다. 당시의 지정학적 지식으로는 스페인이 바로땅 끝이었습니다.“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예수님의 유언을 자신의 삶의 소망과 목적, 방향과 내용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고 싶어서 스페인에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음전도 사역은 안디옥 교회의 도움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더 멀리 가서 복음을 전하려면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 교인들과 사귀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 소원을 이루고자 로마서를 쓴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건짐을 받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가려는데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또한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되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긴 편지의 말미에 바울은 여러 사람들에게 문안합니다. 이를 통해 바울의 넓은 인간관계, 따뜻한 동역자 관계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26() / 340일째날 / 20:7-23 /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바울의 동료들은 예루살렘에 가려는 바울을 막았지만, 그는 보다 더 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담대히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석 달을 머물며 로마서를 쓴 후, 동역자들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드로아에 감시 머물면서, 늦은 밤까지 강론하며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다시 여러 곳을 거친 후 밀레도에 이릅니다. 사람을 보내어 밀레도로 에베소 장로들을 부른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 교회를 굳게 세우기를 부탁하며 그들과 작별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가이사랴에 있는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릅니다. 그곳에서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붙잡힐 것이라고 예언하자 바울으 동역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걸음을 막고 나섭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어떻게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했는지 낱낱이 선교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이방인 형제들의 결례를 행하는 데에 동행합니다. 며칠 후 바울이 성전에 들어가자, 군중들이 삽시간에 달려들어 그를 성전에서 끌어내 죽이려 합니다. 그러자 예루사렘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던 로마 천부장이 바울을 죽음 직전에서 건져냅니다.

127() / 341일째날 / 24-26 / 가이사랴에서의 2

유대인의 위협을 피해 가이사랴에 이송된 바울은 그곳에서 2년을 보내고, 황제의 재판을 청구하여 결국 로마에까지 가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 군대에 의해 로마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로 호송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곳에서까지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대제사장 아나이아가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 터둘로를 데리고 가이사랴까지 찾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온갖 모략을 짜냈던 유대인들은 다시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음모와 궤계를 꾸미고 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힌 지 2년이 지난 후 벨릭스 총독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합니다.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바울을 향한 유대인들의 음모와 증오는 여전히 계속되었고,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바울을 유대인들에게 넘겨주려고 합니다. 이를 눈치 챈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법적 수단, 즉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재판을 청구합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이를 통해 로마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비록 죄수의 몸으로 호송되고 재판 전까지는 자유롭지 못한 신분이 되겠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르는 로마로 갑니다. 이렇게 시작된 바울의 로마행은 서바나까지 가고자 하는 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28() / 342일째날 / 27-28 / 로마 교인들과의 만남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이 일은 전 세계를 향한 복음 전파의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로마로 가는 도중, 그를 태운 배가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나 파선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바울은 로마에 도착합니다. 드디어 로마 교인들을 직접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을 기다리는데, 재판 날짜가 계속 연기됩니다. 바울을 그렇게 로마에서 2년 세월을 보냅니다. 비록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긴 했으나 바울은 그곳에서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며, 여러 편지들을 써서 보냅니다. 옥중서신이라고 불리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바로 이때 쓰인 편지들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2년 동안 복음을 전하였다는 이야기로 사도행전은 마감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포함하여 복음을 위해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고 계십니다. 2 천 년 기독교 역사를 놓고 볼 때, 사도행전 28장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의 정점이며, 땅 끝을 향한 복음의 항해는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129() / 343일째날 / 1-3 /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신 구원

창세 전부터 세밀하게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손길,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모든 성도와 교회들을 은혜로 지키십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정도를 머물며 집중적으로 제자들을 양육했었기에 에베소 교회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비록 자신은 지금 로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 교회가 무엇인지 자세히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를 비교해보면, 유대교에는 내세울 만한 자랑이 많은데, 교회에는 오로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궁극적으로 교회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믿는 자들의 구원과 관련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니 그 모든 여정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손길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니 그 시작은 결국 창세전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 곧 성령의 역사하심을 찬양하며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만물 가운데 충만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창세전부터 준비하신 사랑으로 그 자녀들과 교회를 돌보고 계십니다.

1210(주일) / 344일째날 / 4-6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

바울은 창세전부터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을 행하라고 권고합니다.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창세전부터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입니다. 바울의 하나 됨의 요구는 실제로 교회의 일치를 증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겸손, 사랑, 평화의 실천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을 새롭게 하여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 받은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라고 당부합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의 자세에 있어서도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권면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에베소서 5-6장에서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라고 권합니다. 또한 주 안에서 바론 인간관계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악한 영에 능히 대적하라고 말합니다.

1211() / 345일째날 / 1-4 / 고난 중의 기쁨과 감사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운 사람 바울, 그의 기쁨은 복음을 위한 고난과 함께 묶여 있는 기쁨이었습니다.

빌립보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도중 아시아를 넘어 도착한 유럽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에서 루디아와 점 치는 여종, 간수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이들이 모여 빌립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의 경제적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때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정성을 다해 헌금을 모았습니다. 모은 연보를 가지고 로마에 온 빌립보 교회의 목회자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더불어 교회의 일을 이야기하던 중에 교회 안에서 유오디아파와 순두게파가 대립하고 있다는 등의 사정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는 그만 그곳에서 병을 얻게 됩니다. 바울은 그로 인해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에바브로디도가 건강을 회복하여 빌립보로 돌아가게 되자, 바울은 기쁨으로 이 빌립보서를 써서 그의 편에 보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건강을 회복하여 기쁘고, 빌립보 교인들이 정성을 다해서 쓸 것을 보내준 것이 기쁘고,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과 이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참 기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1212() / 346일째날 / 1-4 / 우주의 주권자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진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

당시 골로새에는 영지주의라는 철학을 비롯하여 공리주의, 신비주의, 금욕주의 등 온갖 철학과 이단들이 횡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골로새서는 편지 자체가 갖는 따뜻함과 더불어, 독특하고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가운데 한평생을 보낸 바울이 골로새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완전성과 충만성을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으므로 다른 헛된 규례나 철학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비밀이라고 말하며,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제한되어 있고 지극히 작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크고 놀랍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골로새서 마지막 부분에서 주변 사람들의 문안을 골로새 교회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서신을 통해 골로새 교회의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만큼 바울과 가까이 있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1213() / 347일째날 / 1 / 기적의 편지

예수 안에서 종과 주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형제가 되자고 제안하는 바울의 이 편지는 복음의 능력과 진리를 전하는 기적의 편지였습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 안에서 제자 빌레몬에게 개인적으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만난 사람 중 오네시모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오네시모가 바울을 찾아와 자신이 바울의 제자인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 나온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고민하다가 그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법률에 의하면, 도망간 종이 다시 잡히면 주인이 종을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는 바울의 설득을 듣고 주인에게 돌아가기로 합니다.

   한 사람의 종을 위해 자기 인격을 걸고 변호하는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를 살리는 것은 물론이요,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종을 형제로 받아들이라는 바울의 제안은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 안에서는 어떤 사회적 차별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이 품은 복음에 대한 넓고 큰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종과 주인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그들이 형제가 되라는 것입니다. 빌레몬서는 참으로 기적의 편지였습니다.

1214() / 348일째날 / 딤전 1-6 / 예수의 선한 일꾼

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바울은 자신의 뒤를 이어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갈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정성 어린 조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자신의 사역을 물려주고, 그의 목회를 돕기 위해 편지를 씁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섬기는 젊은 목회자였습니다. 디모데전서는 본래 디모데 개인에게 보낸 편지이지만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게 하며, 목회 사역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조언들로 이루어져 있어목회서신이라 불립니다.

   디모데전서 안에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그리스도인의 몸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직제로서의 교회입니다. 즉 장로나 집사를 세우는 일 등은 바로 이 디도데전서에서 다루고 있는 특별한 내용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도 바울은 사역자의 자세와 관련하여 거짓 교훈을 경계하고 복음과 교회의 일꾼으로서 선한 교훈으로 양육 받으며, 경건을 연습하라고 충고합니다. 또한 거짓 선생들을 잘 구분하는 법, 나이 많은 성도들과 과부들과 장로들을 대하는 법 등을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족과 경건의 생활을 하라고 당부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독려합니다.

1215() / 349일째날 / 1-3 / 희망의 상속자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여 성도가 된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믿음과 희망의 상속자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전합니다.

디도서는 당시 흔들리고 있던 그레데 지역의 교회 공동체를 안정시키고 주의 몸된 교회를 든든히 하고자 하는 바울의 노력이 담겨 있는 편지입니다. 디도서는 디모데전,후서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후배에게 보내는 바울의목회서신입니다.

   먼저 바울은 이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서 드러나야 할 의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거짓 선생들, 특히할례파들이 헛된 말을 하며 사람들을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일종의 율법주의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율법 준수라는 조건을 추가했습니다. 그들의 거짓 가르침을 폐하고 교회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바울은 그레데 교회의 목회자인 디도에게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2:7-8)라고 강하게 권면합니다. 디도에게 사도 바울이 권고한 내용의 핵심은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말하라는 것입니다(2:1).

1216() / 350일째날 / 딤후 1-4 / 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라

바울은 디도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일을 감당하라고 부탁합니다.

로마 감옥의 연금 상태에서 잠시 풀려난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편지도 쓰고 동역자들과 함께 니고볼리 전도집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로마 당국으로부터 모든 죄수들, 특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모든 죄수들을 다시 감금하라는 명령이 내려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네로가 A.D.64년 로마 대화재로 인한 자신의 정치적 실정을 만회하기 위해 기독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바울이 유언과 같은 편지를 쓰는데, 그것이 바로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당부는 한마디로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할 수 없음을 아는 바울은 고난이 오히려 복이기에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라고 하며 오직 자신이 전도인으로 한길을 걸어왔듯이 디모데에게도 전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를 가르치며 부탁하고 있습니다.

1217(주일) / 351일째날 / 1-4 / 오직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 구속의 대사역을 친히 감당하신 예수님께서는 시험 받는 이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시대적 핍박과 고난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다가 유대교로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것을 찾았다가 외적인 위험 때문에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유산들을 열거해가면서 기독교와 비교합니다.‘과연 기독교가 유대교와 비교해서 뿌리가 없고, 오랜 역사와 전통도 없고, 진정한 생명력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 그 둘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 모든 유대교의 전통과 대비되는 기독교의 자랑은오직 예수뿐이라고 강조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했던 말씀은 완결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말씀의 완성자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익숙히 알고 있는 천사, 바로 그 천사보다도 훨씬 뛰어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선언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위대한 지도자이자 스승으로 존경받는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종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집의 건축가이자 그 집의 주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수고로운 짐들을 내려놓고 참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1218() / 352일째날 / 5-10 /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예수님은 시공간의 한계를 지녔던 옛 언약을 완성하시고 새 언약의 주인이 되심으로써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절대시하는 레위 서열의 제사장보다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을 더 높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초월하고, 그 권위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이제 옛 언약의 율법으로 온전하게 되지 못하는 것이 새 언약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한 구원으로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 즉 하늘의 성소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당신의 피를 속죄 제물로 단번에 드린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이전의 대제사장들은 절기 때마다, 백성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에 온 인류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을 죄 가운데에서 완전하게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후 부활하시어 구원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우는 이들에게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부활의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천국을 건설하시고 죄를 용서하는 길을 여신 분입니다.

1219() / 353일째날 / 11-13 / 삶으로 증거되어야 할 이름, 예수

믿음의 조상들을 본받아 예수님을 바라보며 잠시의 고난을 인내할 때,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지어 가족을 구원한 노아,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유업으로 받을 땅을 찾아 나아간 아브라함, 출애굽한 백성들과 함께 믿음으로 홍해를 건넌 모세,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았던 여호수아와 만나세대 등, 소중한 믿음의 증인들의 신앙은 오늘 우리에게도 귀한 모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믿음의 증인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서는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 뒤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의 유혹과 협박을 이겨내려 애쓰는 신앙인들에게 권면과 격려를 주는 이 긴 서신을 통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끝에는 부활의 승리가 있을 것이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승리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당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던 자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1220() / 354일째날 / 1-5 / 행함, 믿는 자의 움직임

야고보는 교회 안에 참된 이웃 사랑의 실천이 없음을 지적하면서,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강하게 교훈합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초기교회 공동체에서 중요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로마 제국의 핍박이 점점 거세어 가자 야고보는 당시 초기교회의 책임 있는 자도자로서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야고보는 박해를 받고 시험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 고난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많은 박해와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는 희망의 약속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까지 말하면서 믿음의 실천과 행동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깊이 살피지 않으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말했던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씀과 상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숲에서 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물과 피땀을 쏟으며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 있듯, 그를 따르는 자들도 역시 삶의 구체적인 자취가 있어야 합니다. 말뿐인 섬김과 사랑은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없으며, 행함 없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향하여 빛도 향기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221() / 355일째날 / 벧전 1-5 / 소망의 반석

시험과 근심은 잠깐이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성도들에게 주어질 영광과 존귀는 그 모든 괴로움을 넘어서는 영원한 것입니다.

A.D.64. 네로 황제가 로마 대화재 사건의 책음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하면서 기독교 박해가 급속히 가중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베드로는 교회의 장래를 염려하며,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편지를 보냅니다. 베드로의 편지는 고난과 핍박을 견디고 있는 성도들에게 힘과 격려를 주는 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강한 소망과 비전이 있는 사람에게는 현재의 시련과 고난을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강조하며 예수님 안에서의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시험과 근심은 잠깐이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들에게 주어질 칭찬과 영광과 존귀는 그 모든 괴로움을 상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무거운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오히려 진심으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시련의 기간은 그때가 지난 후에 있을 영원한 즐거움에 비교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시련의 시간은 믿음을 평가하는 시험이자, 훈련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1222() / 356일째날 / 벧후1-3 / 거짓 교훈을 물리쳐라

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의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로마 제국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환난과 핍박이 가중되는 현실 속에서, 내부에서는 이단의 출현과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는 성도들이 생겨나는 등 초기교회가 많은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베드로후서는 이 부분을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출발은 기독교와 비슷한 것 같은데 끝이 다른 것, 즉 이단들에 관한 충고입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준다고 하면서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그럴듯하게 꾸미고, 그것이 마치 옳은 것처럼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성도들을 거짓으로 인도하는 그들의 가르침은 결국 진리 되신 주님께 대항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베드로는 그런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교회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의심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이 누군가가 거짓말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고 확실히 선언합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이 그분의 사역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났기에, 그 누구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음을 계속 강조합니다.

1223() / 357일째날 / 1 / 믿음을 위한 투쟁

유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승리에 동참한다는 믿음 안에서, 의와 도를 지키기 위해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이 썼다고 알려진 유다서는 교회를 향한 박해가 심해지자 성도들 가운데 배교하는 이들이 생기는 영적 싸움의 현장 가운데에서 어떻게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는지를 교훈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가 로마 대화재 사건의 방화범으로 기독교인들을 지목하고,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사형에 처하자 초기교회는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배교자들이 생겨나고 더 나아가 이단들까지 교회를 흔들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때 초기교회의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일을 믿음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이 유다서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를 믿는 모든 이들이 이미 승리하였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완결된 것은 아니기에 서로의 격려와 기도가 필요하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다는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해 약한 세력과 힘써 싸우라고 권면합니다. 이 싸움은 믿음을 지키는선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싸움이 치열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224(주일) / 358일째날 / 요일 1-5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에 거하는 자로서, 진실하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로운 삶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한은 초기교회를 책임지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요한의 편지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생명이요, 빛이요, 사랑이십니다. 요한복음이 예수님께서 어떻게 세상의 빛으로 사셨는지를 보여준다면, 요한일서는 세상의 빛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으로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모든 인생들의 생명이십니다. 요한은 이 진리를 들었고, 보았고, 손으로 만진 것처럼 체험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하여 전한다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빛이십니다. 그 누구도 그분 안엣 거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빛을 발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과의 사귐, 이웃과의 사귐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신앙을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 사람과 사람과의 교제라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교제의 완성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강조하셨던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1225() / 359일째날 / 요이1, 요삼1 / 사랑과 진리의 조화

요한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써 모든 어려움의 일을 벗고, 선한 것을 본받으며, 사랑의 빛 가운데로 들어오라고 권면합니다.

요한이서는 어떤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서신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 초기교회에는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이 유행하여 그리스도인르을 넘어지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육체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미 택함을 받아 주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바로 이런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하는 내용이 바로 요한이서의 내용입니다.

요한삼서는 가이오에 대한 풍성한 축복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도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이오는 지신의 집을 개방해서 전도인들이 오갈 때 초대하여 숙식을 제공하고,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도 요한이 매우 기쁜 마음으로 가이오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 전도자들의 아름다운 발길을 도운 가이오에게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는 축복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초기교회 지도자 요한의 이러한 격려가 가이오를 더욱 주의 일로 이끌게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1226() / 360일째날 / 1-3 / 교회를 위한 성령의 권면

우리를 승리케 하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권면, 인생과 교회들을 향한 책망조차도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선물입니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된 사도 요한도 로마 제국에 의해 마침내 밧모 섬에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밧모 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네가 본 것”“지금 있는 일”“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명하십니다. 당시 고난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준비된 승리의 소식을 건네받은 요한에게 그 소식을 성도들에게 전하고 글로 남기라는 것입니다. 그 기록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 미리 받은 승리의 노래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써서 보냅니다. 첫 번째 교회는 처음 사랑이 식어버린 에베소 교회입니다. 두 번째 교회는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받은 서머나 교회입니다. 세 번째 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에 빠져버린 버가모 교회입니다. 네 번째 교회는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허용한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다섯 번째 교회는 사데 교회입니다. 여섯 번째 교회는 말씀을 지키며 배반하지 않았던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일곱 번째 교회는 미지근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결국 성령께서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칭찬과 책망으로 함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책망조차도 사랑의 선물임을 알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데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1227() / 361일째날 / 4-7 / 오직 한 분을 위한 노래와 일곱 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보좌에는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으며, 예수님은 공의로운 심판자가 되십니다.

하늘에서 요한에게 올라오라고 명하시는 음성이 들립니다.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본 하나님 보좌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요한이 본 하늘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가 보좌에 앉으셨고, 그 주변에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고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고 천사가 묻습니다. 책을 펴기에 합당한 자가 그 누구도 없자, 사도 요한이 웁니다. 그러자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라고 말합니다. 그 다윗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계시록 6장부터는 사도 요한이 본 미래에 관한 환상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판 날의 사건들이 연속해서 기록되다가 여섯째 봉인과 일곱째 봉인 사이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 그들의 이마에 인을 찍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입니다.

1228() / 362일째날 / 8-11 / 일곱 나팔의 심판과 순교자들

준비된 일곱 천사가 각각 나팔을 불 때마다 재앙이 닥쳐오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백성과 함께하십니다.

이어서 일곱째 인이 떼어질 때의 상황이 기록됩니다. 일곱째 인이 떼어지고 처음 반 시간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기만 합니다. 일곱째 인은 일곱 나팔로 이어지고 준비된 일곱 천사가 일곱 개의 나팔을 붑니다. 일곱 천사가 각각 나팔을 불 때마다 세상에는 재앙이 닥쳐옵니다. 첫 번째 나팔을 부니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이 땅의 1/3을 태웁니다. 두 번째 나팔을 부니 바다의 1/3이 피가 됩니다. 세 번째 나팔을 부니 쓴 쑥이라는 이름의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물의 1/3이 쓰게 됩니다. 네 번째 나팔을 부니 해와 달 그리고 별의 1/3이 어두워져서 낮고 밤의1/3이 빛이 없어집니다. 다섯 번째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을 엽니다.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은 사람을 해하는 권세를 받아, 인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여섯 번째 나팔을 부니 불, 연기, 유황의 재앙으로 사람의 1/3이 죽임을 당합니다.

   요한계시록 10장은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리기 직전에 있었던 일을 보여줍니다. 성도들이 가장 큰 박해를 받게 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놀라운 역사를 성도들 앞에 보이시리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1229() / 363일째날 / 12-15 / 하나님의 역사와 위로

박해의 칼날 아래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의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는 하나님의 대적자들이 등장합니다. 용으로 대변되는 대적자들은 만국을 다스릴 아기를 훼방하기도 하고, 해산한 여인을 핍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셔서 훼방자들을 하늘에서 땅으로 쫓아내십니다. 용으로부터 세상의 권세를 건네받은 짐승이 온 세상을 미혹시킵니다. 그 짐승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때로는 힘으로 억압하며 땅에 남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짐승의 권세 아래 놓여 그를 경배하고 따를 때에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은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가시적인 정욕과 물질적인 탐욕의 유혹이 두드러지는 악한 시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들에게는 참된 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5장에서 일곱 가지 대접에 담긴 마지막 일곱 가지 재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재앙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끝날 것입니다. 불의한 자에 대한 심판과 재앙이 깊어질수록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 또한 높아집니다. 어떠한 환경 송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1230() / 364일째날 / 16-18 / 공의로운 심판과 준비된 미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의 대에 온 세상을 공의와 정의로 심판하시며, 홀로 주권자이심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일곱 봉인, 일곱 나팔을 지나 일곱 대접에 이를수록 심판에 따른 재앙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일곱 천사들이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히 담긴 일곱 대접을 준비하여 차례로 당에 쏟아놓습니다.

   첫째 대접을 쏟으니 짐슴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독종이 생깁니다. 둘째 대접을 쏟으니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습니다. 셋째 대접을 쏟으니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되었습니다. 물을 차지한 천사는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라고 말합니다. 넷째 대접을 쏟으니 해가 사람들을 태웁니다. 다섯째 대접을 쏟으니 사람들이 병과 종기로 신음하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여섯째 대접을 쏟으니 강물이 말라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됩니다. 그리고 일곱째 대접이 쏟아지기 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임금들이 모입니다. 일곱째 대접이 쏟아지니 큰 지진이 나고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집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왕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땅의 임금이 온 세상의 권세를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최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대상이 될 뿐입니다.

1231(주일) / 365일째날 / 19-22 /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기쁨

더 이상 눈물과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과 거룩한 성도들이 함께합니다.

사도 요한이 큰 음녀가 받을 심판과 큰 성 바벨론이 받을 심판을 보고 난 후,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을 듣습니다. 또한 요한은 무저갱의 열쇠를 들고오는 천사를 봅니다. 하나님을 훼방하는 사탄은 무저갱에 던져져 천년 동안 인봉될 것이요, 악의 근원이 사로잡힌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천 년 동안 왕 노릇할 것입니다. 또한 천 년이 흐르고 난 후 사탄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만물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지으신 작품인 새 예루살렘의 광경이 펼쳐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빛납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보이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와 그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주는 풍요로움이 넘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환난 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망과 고통, 눈물과 아픔이 없는 새 나라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증거하신 이가 말씀하십니다.“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우리는 기쁨으로 화답합니다.“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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