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은 온 땅의 족속들과 나라를 향해 존귀와 위엄, 능력과 아름다움이 충만하신 여호와께 새 노래로 찬양과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합니다.
(시편 91편) 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자가 그분의 사랑을 입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잠 8:17).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시편 92편) 악인의 형통만큼 의인들을 괴롭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시인은 그것에 대해 탄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답답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영원토록 지존하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의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알고 있는 시인은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겠노라고 노래합니다.
(시편 93편)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한 다스리십니다. 이 시편은 바로 그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이 세상은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94편) 위로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95편) 땅과 바다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분 앞에서 마음을 열고 감사함으로 나아가며 즐거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시편 96편) 이 시편의 시인은 첫 문장을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97편) 시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땅에게 즐거워하라고 말하며 허다한 섬들에게 기뻐하라고 외칩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구체적으로 시온의 기쁨이 되고 유다의 즐거움이 된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98편) 하나님께서는 의와 공평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한 분만이 나팔과 호각과 수금과 음성으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시편99편)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은 세세무궁토록 찬양받으실 이름입니다.
(시편 100편)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와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 관계 안에서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감사와 찬송으로 여호와께 나아갑니다.
(시편 101편)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배교자들의 행위를 미워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그 마음가짐이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통로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시편 102편) 이 시편은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는 기도자 개인이 탄원하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탄원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자는 탄원과 동시에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 6월 2일(금) - 153일째날/ 시편 103-106편/ 시와 찬미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사라응ㄹ 알고 있는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가장 최우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편 103편) 왕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것에 익숙했던 다윗이 자기 자신의 영혼에게 명령합니다. 그 명령은 바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사랑을 알고 있는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가장 최우선이었습니다. 찬양은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는 자의 마땅한 본분이자 특권입니다.
(시편 104편) 이 시편 역시 103편과 같이 앞뒤에 "내 영혼아 하나님을 송축하라"라는 명령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찬양의 이유를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잊지 않을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 본연의 의무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뿐 아니라 견고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인간의 마땅한 본분이자 특권입니다.
(시편 105편)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행하신 기사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 78편과 106편에서 그러했듯이 하나님께서 애굽과 광야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우셨는가를 회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시편 106편) 시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하자는 시인의 선언도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지한 외침인 것입니다. 시인은 애굽과 광야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실하게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노래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 6월 3일(토) - 154일째날/ 시편 107-118편/ 시와 찬미
☞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오른편에 계시다는 믿음 가운데 시인은 자신의 사정을 스스럼없이 모두 쏟아놓으며 하나님만을 신뢰합니다.
(시편 107편)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의 시편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감사 시편으로 알려진 이 시편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로다"라는 표현이 네 번이나 반복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시편 108편) 다윗에게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그의 힘이었고 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이 그를 돕는다는 믿음이 다윗을 당당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시편 109편) 다윗이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만이 악인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복을 주실 수 있고 구원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다윗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시편 110편) 이 시편은 신약성경에서 많이 인용되는 시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시편에서 말하는 '내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는 주의 백성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로 나아올 것입니다.
(시편 111편)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 전심으로 감사하겠다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영원토록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인생들의 사명이자 특권입니다.
(시편 112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정직한 자이고, 은혜를 베푸는 자이며, 의인입니다. 잠언의 내용과 빗대어 본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기도 합니다.
(시편 113편)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일으켜 세우셔서 높이시고, 또한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로 하여금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해 돋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찬양받으실 이름입니다.
(시편 114편) 시인은 바다로 도망가고, 요단 강은 물러가고, 산들은 숫양 같이, 작은 산들은 어린 양 같이 뛰놀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것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비할 바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찬양의 제목입니다.
(시편 115편) 시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은 거짓 신임을 고백합니다. 시인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영원토록 송축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시편 116편) 시인은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께 서원하며 간절히 기도하며 도우심을 얻었습니다. 시인은 이 경험 후에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며 자신이 서원한 바를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시편 117편) 이 시편은 시편 가운데 가장 짧지만, 이 시편만큼 세상 모든 나라들과 모든 백성에게 우렁찬 명령을 하는 시도 없을 것입니다. 이 시인의 외침과 같이 온 세상이 인자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시편 118편) 이 시편에서는 백성의 지도자가 전쟁을 승리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에 회중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고백하며 그 구원의 능력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 6월 4일(주일) - 155일째날/ 시편 119편/ 시와 찬미
☞ 주의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사모하며 그 교훈에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이에게 주의 말씀은 그 발에 등이요, 그 길에 빛이 되실 것입니다.
(시편 119편) 시편 119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긴 시편입니다. 기록상 작자 미상의 시편이지만 그 내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에스라가 지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전체 176절 가운데 구절을 제외한 모든 구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법' '율례' '규례' '법도' '계명' '명령' '말씀' '약속' '길' '도'등의 많은 용어가 나올 정도로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라고 노래하며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하여 기초부터 튼튼히 세워져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시인은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마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는 이 시편에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바로 서기를 꿈꾸는 시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 6월 5일(월) - 156일째날/ 시편 120-134편/ 시와 찬미
☞ 기쁨으로 주의 성전을 향해 오르며 하나님의 도움을 찬양하는 이들의 발걸음에 복 주시는 하나님, 그분과의 깊은 고제가 즐거움이 됩니다.
(시편 120편) 시편 120편부터 134편은 절기 때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하는 순례자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살던 곳이 속임과 다툼으로 얼룩진 곳임을 밝히고 자신을 그곳에서 건져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편 121편) 하나님의 돌보심은 찬양의 제목입니다. 시인은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을 돌보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22편)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에 와야 했습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에 다다르는 이 시인의 고백처럼 기쁨이 넘칩니다.
(시편 123편)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에 시달려온 시인은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합니다. 시인은 스스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시편 124편) 다윗은 자신을 쫓는 모든 자의 손에서 벗어날 때마다 하나님의 은헤를 기억하였습니다. 이 시편은 원수의 손에서 벗어난 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고백하며 지은 시입니다.(시편 125편)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시인은 그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선대하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시편 126편) 이스라엘 백성이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포로에서 풀려났을 때의 기쁨을 회상하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제안하고, 어려움이 지나면 더 큰 기쁨의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시편 127편) 이 시편은 솔로몬의 지혜를 담은 시편입니다. 솔로몬은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128편) 시인은 여호와를 경회하고 그의 길을 걷는 자를 향하여 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 복은 가족들이 건강하고 자녀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자라는 것입니다.
(시편 129편)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들은 강대국에 의해서 시달림을 받은 적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시인은 그들이 자신을 여러 번 괴롭게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승리하였음을 노래합니다.
(시편 130편) 시인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부르짖으며, 간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응답이 더딜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분의 때에 응답해주실 것을믿고 신뢰합니다.
(시편 131편)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들이 다윗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편 132편) 다윗 왕의 후손들을 찬양하는 제왕시입니다. 시인은 다윗이 행한 일들을 나열하면서 그의 후손을 향해 축복을 돌리고 있습니다.
(시편 133편) 다윗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연합과 협력을 보며 하나님께 복을 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헌신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시편 134편) 백성들이 절기 기간 동안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이에 대한 응답으로 제사장이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 6월 6일(화) - 157일째날/ 시편 135-142편/ 시와 찬미
☞ 모든 인생들의 생각과 행동을 감찰하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분께서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시기를 간구하며 엎드립니다.
(시편 135편)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참 신이며, 우상은 손으로 만든 조각에 불과하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송축하며 찬양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시편 136편) 이 시는 유월절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제사장들이 제시하는 감사의 이유에는 모세오경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스라엘이 마땅히 감사해야 함을 피력합니다.
(시편 137편)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강가로 끌려가서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있을 때를 회상하며 지은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호소하고 자신들의 원수들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습니다.
(시편 138편) 다윗이 성전 앞에서 감사와 찬양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감사히 여깁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떠한 어려움과 곤경에 처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구원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시편 139편) 다윗은 자신이 쫒기고 있는 상황 가운데 있으며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했노라고 하나님을 향해 탄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믿음을 다시 굳게 세웁니다.
(시편 140편)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을 당할 때 그를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악인들을 심판하여 달라고 청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악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때, 그들을 대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기대하고 참아냈던 것입니다.
(시편 141편) 다윗은 악인들을 대적하기보다는 하나님께 호소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합니다. 이는 그가 공평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판결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다윗은 자신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달가고 기도하며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고 간청하며 기도합니다.
(시편 142편)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대를 피해 쫓겨다닐 때 굴속에 숨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했습니다. 다윗은 원수들의 손에서 건짐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꿈꾸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 6월 7일(수) - 158일째날/ 시편 143-150편/ 시와 찬미
☞ 왕이신 하나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며 무궁하신 하나님. 그분을 찾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시편 143편) 다윗은 마음이 절박하고 조급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다윗은 간구할 때마다 항상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그 입술에 찬송을 잊지 않았습니다.
(시편 144편) 시인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 받은 백성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잘 자라나게 하시며, 풍요롭게 하시고, 자기 백성을 돌보아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45편) 이 시편에는 하나님을 찾는 모든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송축하겠다는 시인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왕이라 칭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받들어 영원히 송축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모든 열방에게 전하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편 146편) 시편 146-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을 맺습니다. 시인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억눌린 자와 주린 자를 살피시고 그들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시편 147편)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여러 면모 가운데, 이 시편은 특히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율법과 규례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148편) 이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모든 피조물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49편) 이 시편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 승리를 축하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시입니다. 시인은 원수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여러 악기들과 함께 새 노래로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150편) 시인은 호흡이 있는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전능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 6월 8일(목) - 159일째날/ 왕상 12-14장/ 남북분열과 여로보암의 길
☞ 분열된 남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본면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여로보암은 악한 왕의 대명사가 됩니다.
다윗의 신앙과 정치적 성공을 계승하지 못한 솔로몬은 남북분단의 씨앗을 잉태시켰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역시 아버지의 신앙과 정치의 폐단들을 그대로 이어갑니다.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엽게 하소서"라고 호소하는 백성들에게 르호보암은 더 혹독하게 백성들을 다스리겠다고 대답합니다. 이 같은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북쪽 열 지파를 떼어 맡기시며, 다윗처럼 하나님 안에서 정의와 공의의 정치를 행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런데 점차 교만해진 여로보암은 일 년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으로 성인 남자들을 보내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웁니다. 또한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 날짜도 마음대로 바꿔버립니다. 이로써 여로보암은 악한 왕의 대명사가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됩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로 평가하시는데, 안타깝게도 북이스라엘은 19명의 왕들 모두가 '여로보암의 길'을 따릅니다.
▣ 6월 9일(금) - 160일째날/ 왕상 15장-16:20/ 분쟁하는 남북왕국
☞ 역사가 진행될수록 이스라엘 왕들의 악행은 계속되었지만, 하나님은 죄악의 수렁으로 빠져가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남 유다에서는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을 이어 아사가 왕이 됩니다. 아사는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없애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국가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사 왕 36년째 되는 해에 북이스라엘 바아사가 남유다를 치러 올라오자, 아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서 취한 좋은 것들을 바치면서 북이스라엘을 대신 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때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 왕의 잘못을 꾸짖자, 화를 내며 하나니를 옥에 가두기까지 합니다. 결국 아사는 말년에 발에 병이 들어서 인생을 마칩니다.
그 무렵 북이스라엘에서는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됩니다.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대로 여로보암 가문이 멸절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아사 역시 여로보암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오르나 장관 시므리가 모반을 일으켜 엘라를 죽이고 대신 왕이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시므리가 있는 곳에 에워쌉니다. 성읍이 함락되는 것을 본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서 삶을 마감합니다.
▣ 6월 10일(토) - 161일째날/ 왕상 16:21-17장/ 오므리 왕조
☞ 오므리에서 그 아들 아합으로 이어지는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깊어만 가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준비하여 보내십니다.
북 왕국에서는 계속해서 쿠데타가 이어집니다. 군대 지휘관이던 오므리도 쿠데카로 정권을 잡아 정치적으로도 대단히 성공을 거두고, 시돈 사람의 딸 이세벨을 아들 아합의 아내로 데려왔습니다. 솔로몬 때 수많은 이방 여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우상박물관이 되었듯이, 이번에는 이세벨에 의해 북왕국이 바알 신앙으로 점령당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해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악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 그 때가 바로 오므리 왕조의 아합 왕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엘리야를 이스라엘에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다는 이야기는 곧 그 시대가 그만큼 참담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온몸을 던집니다. 그의 사역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차원이 아니라, 바알과 하나님 중에서 '누가 참 신이냐?'라는 문제를 놓고 싸우는 차원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수년 동안 북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심으로써 북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십니다.
▣ 6월 11일(주일) - 162일째날/ 왕상 18-19장/ 오므리 왕조와 엘리야의 사역
☞ 갈멜 산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아합이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때에 엘리야 선지자가 목숨을 걸고 갈멜 산에서의 '대결'을 신청합니다.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총 850명과 엘리야 한 사람의 대결입니다.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의 제단에는 불이 내려오지 않았지만, 엘리야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과 제단을 태우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본 백성들은 모두 땅에 엎드리면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갈멜 산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이세벨은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을 가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워진 엘리야는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도망가다가 지친 엘리야가 로뎀 나무 그늘을 의지해서 쓰러져 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먹과 물을 마시고 힘을 내어 일어나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40일 동안 밤낮으로 걸어서 호렙 산에 이른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희망을 말씀하시며 하세엘, 예후, 엘리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는 모습을 시작으로 그 서막을 엽니다.
▣ 6월 12일(월) - 163일째날/ 왕상 20-22장/ 오므리 왕조의 죄악과 아합의 최후
☞ 나봇 포도원을 강탈하는 등 죄악을 일삼던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대로 아람과의 전쟁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토지의 소유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만 있으며, 백성들은 그 토지의 경작권만 거래할 수 있었습니다(레 25:23). 그런데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왕이라 하여도 율법을 어길수는 없다면 아합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왕비 이세벨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거짓혐의를 나봇에게 뒤집어씌우고 그를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남유다의 왕위는 아사에거 그의 아들 여호사밧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사밧은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백성들을 공정히 판결하기 위해 재판관도 세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강대할 수 있었던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과도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아합 가문과 혼인하여 인척관계까지 맺습니다. 이후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아람에게서 길르앗 라못을 되찾고자 아합 왕이 벌인 전쟁에 동맹국으로 참여합니다. 이 전쟁에서 아합은 전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는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남유다의 역사와 계속해서 죄악으로 깊어가는 북이스라엘의 역사가 서로 대비되면서 열왕기상이 마무리됩니다.
▣ 6월 13일(화) - 164일째날/ 왕하 1-2장/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 아하시야의 죄악 된 삶과 통치로 인해 아합 시대의 죄악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엘리야의 사역이 엘리사에게로 계승됩니다.
아합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릅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아하시야의 행적은 그가 자신의 병을 에그론의 신 바엘세불에게 물었다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아합 가문의 죄악이 온 이스라엘을 뒤덮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패역하고 어두운 시대를 밝히기 위해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던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승천함으로써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바알을 섬기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시대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큼 훌률한 것이었지만 그의 평생의 수고가 맺은 열매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변할 줄 모르는 시대의 죄악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해야 하는 엘리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남겨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주셨던 '성령의 역사'를 엘리사에게 갑절로 주심으로써 그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펼쳐가실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 6월 14일(수) - 165일째날/ 왕하 3-5장/ 엘리사가 베푼 기적의 배경
☞ 선지자의 제자들을 교육하는 가운데 엘리사가 베푼 기적에는 그 시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의 사역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북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 때입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 왕은 여호사밧 왕에게 모압을 치러가자고 제안하면서 여호사밧의 권유대로 엘리사에게 도움을 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위기의 순간에만 하나님을 찾을 뿐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엘리사의 사역은 선지자의 제자들을 교육하는 일에 집중되었고, 이때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선지자의 제자의 아내가 과부가 되었는데, 너무도 가난하여 이들이 종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제자의 과부를 돕기 위해 일어난 빈 그릇에 기름이 채워지는 기적은 그런 아픈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엘리사가 행한 또 다른 기적은 아람의 장군 나아만의 한센병을 고쳐준 것입니다. 이 일로 나아만이 하나님을 만군의 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명받은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데, 이방 백성인 나아만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심을 체험하고 믿음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 6월 15일(목) - 166일째날/ 왕하 6-8장/ 오므리 왕주와 엘리사의 사역
☞ 아람이 사마리아 성을 둘러싸고 있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통해 북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시대 속에서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는 선지자의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대를 책임지기 위한 엘리사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동안, 북이스라엘은 알마의 침공으로 전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이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침공한 아람군의 포위로 인해 북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에 빠집니다.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을 둘러싸고 있는 이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구원의 계획을 알려주시고 놀라운 기적을 통해 그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리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남유다에서는 여호사밧의 장자 여호람이 왕위에 오릅니다. 여호람은 아버지 여호사밧의 선한 길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북이스라엘의 아합처럼 악한 길로 행하는데, 이는 그가 아합의 딸인 아달랴를 아내로 삼은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아달랴가 남편 여호람과 아들 아하시야의 마음을 움직여 남유다 내에 바알 숭배를 퍼뜨림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죄악이 남유다에까지 확대됩니다.
▣ 6월 16일(금) - 167일째날/ 왕하 9-10장/ 예후의 치적과 엘리사
☞ 엘리사가 보낸 선지자의 제자로부터 기름 부름을 받은 예후는 곧장 아합 가문을 진멸하고 새로운 역사의 전기를 마련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남유다에까지 퍼지고 있었습니다. 아합과 요람으로 이어지는 북이스라엘의 왕조도, 여호람과 아하시야로 이어지는 남유다의 왕조도 하나님의 기대와는 너무도 멀어져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합 가문에 대한 심판을 예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길르앗 라못으로 보내어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하십니다. 예후는 즉시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왕으로 선포되었으며,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을 진멸합니다.
예후의 칼날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기대를 가져보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새로이 세워진 예후는 북이스라엘의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처단하는 결단과 용기를 보여줍니다. 에후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도구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이 4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를 이을 것임을 약속해주십니다. 하지만 에후는 많은 우상들을 제하기는 했지만 단과 벧엘에 있는 금송아지들은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 6월 17일(토) - 168일째날/ 왕하 11-14장/ 요아스의 치적과 여로보암 2세
☞ 남유다에서는 아달랴에게 빼앗겼던 왕위를 요아스가 되찾고,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시대를 맞이합니다.
남 유다 왕 아하시야가 죽자,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스스로 남유다의 왕이 되어 다윗의 후손들을 진멸하려 합니다. 그러자 아하시야의 누이이자,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던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6년 동안 키웁니다. 아달랴의 통치가 시작된 지 7년째 되는 해, 제사장 여호야다의 주도 아래, 국가의 주도권이 요아스에게로 갑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로 인해 남유다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며, 퇴락한 성전도 새로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남유다는 또 다시 타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선지자가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를 죽이고 맙니다. 그때로부터 일주일 후에 아람 군대가 쳐들어와 남유다를 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이후 요아스는 신하들에 의해 죽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
한편, 북이스라엘은 멸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는 번영했던 시대였으나,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지 못했던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타는 듯한 마음으로 아모스, 호세아, 요나 같은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 6월 18일(주일) - 169일째날/ 암 1-5장/ 나라들에 대한 심판 선언
☞ 아모스는 주변 나라들과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며, 사회 안에 정의와 공의를 세울 것을 호소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예후 왕조가 경제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때는 여로보암 2세 시절로, B.C8세기 무렵입니다. 그러나 화려해보이는 정치적, 경제적 성공 내부에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극으로 치닫고 있었고, 신앙적으로도 우상 숭배가 만연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보내셔서 사회의 정의와 공의가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국제상황을 보면, 북이스라엘 북쪽에는 아람, 북동쪽에는 앗수르, 남쪽에는 남유다와 애굽이 있었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영토를 넓게 확장했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면, 이 세력의 균형이 깨질 것입니다. 이것은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을 향해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암 1:3)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죄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아모스 2장 6절부터 북이스라엘이 벌을 받는 이유를 열거하기 시작합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파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 6월 19일(월) - 170일째날/ 암 6-9장/ 정의를 강물 같이
☞ 하나님께서는 북왕국의 마지막이 이르렀음을 알주시며 역사의 단절을 선언하시는 가운데,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을 기약하십니다.
아모스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대조시켜 놓습니다. 이불이 따로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뿐인 겉옷을 덮고 자야 하는데 낮에 전당잡힌 겉옷을 찾을 능력이 없어 추위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여름궁, 겨울궁을 따로 지어놓고 상아침대에 누워서 살진 양들을 잡아 요리하고 대접에 포도주를 따라 마시며 비파를 타고 있습니다. 이는 레위기나 신명기에 명시된 약자보호법이 도무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줍니다.
아모스의 선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끝내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단호한 심판을 선언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그들로 인해 아모스의 슬픔은 더해만 갔고, 하나님의 마음 또한 타들어 갔습니다. 아모스 9장은 지금까지 아모스가 전했던 모든 예언이 하나도 흩어짐 없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벧엘의 제단을 허시고 또한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십니다.
▣ 6월 20일(화) - 171일째날/ 호 1-4장/ 호세아의 고멜 사량 비유
☞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의 결혼을 통해 북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신실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아모스를 통해 북이스라엘을 호되게 질책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호세아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전하고 계십니다.
선지자 호세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명령은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쏟아 놓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불붙듯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죄악과 우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은 주변 나라들이 섬기는 신, 곧 바알과 아스다룻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고멜도 바알 신전을 드나드는 여인이었습니다. 호세아는 이런 고멜과의 관계를 통해서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음란한 생활로 나아가는 아내 고멜을 향하여 계속 순결한 사랑을 쏟아붓는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에게 보여준 행동은 이스라엘과 결혼한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관계를 결코 쉽게 끊을 수 없음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 6월 21일(수) - 172일째날/ 호 5-9장/ 제사보다 사랑을 원한다
☞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인애를 더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에 대한 징계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일에만 급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십니다. 마치 고멜의 음행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는 호세아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너무도 당연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변치 않는 사랑이며, 눈에 보이는 제사나 그 무엇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실 때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일관되게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북이스라엘에 심판이 선언되는 이유도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이웃을 사랑하지도 못했던 것이요,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마지막 호소가 있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이스라엘이 철저하게 망합니다. 앗수르가 내려와서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방으로 강제이주시킵니다.
▣ 6월 22일(목) - 173일째날/ 호 10-14장/ 여호와께 돌아오라
☞ 패역한 백성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시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호소하십니다.